오피니언 시론

기업이 신나야 성장동력 회복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최근 한국은행은 향후 10년간 잠재성장률이 4%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면서 하락의 가장 큰 요인으로 투자 부진을 꼽았다. 대한상공회의소 역시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고착될 가능성이 커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통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심지어 민간 경제연구기관들에서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2015년까지 10년 정도밖에 안 남아 있으며 이 기회를 잃어 버리면 선진국이 되기는커녕 현재 세계 11위권에 있는 경제 규모가 향후 60위권 밖으로 추락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상황의 심각성을 냉철히 인식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대로 설정해 모든 경제 주체들이 힘을 합쳐 나가기보다는 최근의 도청 파문에서 보듯이 정경유착의 불행한 과거에 더욱 집착하고 이로 인해 반기업(인) 정서 역시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듯하다. 더욱이 성장이냐 분배냐의 다소 한가하고 무의미한 논쟁에 세월을 보내고 있다. 성장을 통해 파이를 더 키워야만 가난한 국민을 위한 분배도 더 잘 되고, 무엇보다도 최고의 분배인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은 애써 무시되고 있는 듯하다.

10년 후 한국 경제가 몰락하지 않고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장 엔진을 다시 점화시켜야 하는데 그 대안은 명약관화하다. 성장잠재력 저하에 대한 우려가 신성장동력이 불명확하고 투자가 부진한 데에서 기인한다면 결국 국내외 기업의 국내 투자 의욕을 되살리고 신성장동력 발굴에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을 북돋워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긴요한 대안이다.

특히 한국은 흔히 재벌이라고 불리는 대기업(집단)이 경제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를 감안하면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의 육성도 중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대기업들이 해외가 아닌 국내에 투자하면서 많은 자본과 우수한 인력 투입이 요청되는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적극 매진하도록 격려하고 지원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해 세계 20위의 브랜드로 급부상하고 그 뒤를 이어 현대차.LG전자.포스코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 암울하게만 보이는 한국 경제의 최대 희망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향후 한국 경제의 미래를 밝혀 줄 수 있는 신성장동력들도 결국 상당 부분 기존의 대기업들이 중심이 되어 개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경유착의 불행한 과거에 천착하고 반기업(인) 정서에 사로 잡혀 대기업들의 발목을 잡기보다는 이들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격려와 지원을 해 주는 미래 지향적 사고가 절실히 요청된다. 물론 대기업들도 정경유착의 불행한 과거에 대해 통렬한 자기반성을 하고 이 기회에 확실히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더 나아가 기업 지배구조의 개선 및 윤리 경영, 중소기업과의 상생 및 보다 적극적인 연구개발(R&D) 투자와 브랜드 가치 향상, 신성장동력 발굴 등을 통해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 더욱 매진한다는 서약을 보다 확고히 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이제 과거보다는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정치권을 포함한 각 경제 주체가 자기 반성과 용서의 기반 아래 서로 힘을 합쳐 기존 제품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신성장동력을 적극 발굴하는 데 총력을 경주해야 한다. 과거의 잘잘못이나 호불호는 어떻든 간에 한국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대기업(집단)을 성장잠재력 회복의 주체로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가 한국 경제의 미래에 결정적으로 중요할 수 있음을 잘 인식해야 할 것이다.

송재용 서울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