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6자회담 첫날부터 썰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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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핵 6자회담 대표들이 13일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회담에 앞서 취재진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베이징 AP]

13일 베이징(北京)에서 속개된 2단계 4차 6자회담(1단계는 7월 26일부터 13일간 진행됐던 6자회담)의 전망은 '시계 제로'다. 이날따라 베이징 하늘의 구름은 낮고 짙게 깔렸다.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회담 직전 "북한은 경수로를 가져야 하며 이것이 핵 문제 해결의 관건"이라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미국의 입장과는 정면 배치된다. 미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즉각 "경수로 문제는 논의조차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받았다. 회담장 주변에 "회담 전망이 밝지 않다"는 소문이 파다해진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한국 측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부 차관보는 "낙관도 비관도 않겠다"고 말을 아꼈다.

회담은 이날 오후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6개국 수석대표와 소수의 대표단이 만나는 소인수 회의로 시작됐다.

◆ "각 측에 중대한 이견이 있다"=힐 차관보는 이날 베이징행 항공기 안에서 "북한은 핵 무기를 만드는 사업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같은 시각 김계관 부상은 평양 순안 공항을 출발하며 "우리는 평화적인 핵 활동을 할 권리가 있으며, 미국이 여기에 조건을 달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공식 회담 직전 양측 수석대표가 '명백한 폐기'와 '주권적 핵 이용 권리'로 대립각을 세운 것이다. 지난달 7일 휴회에 들어가던 당시의 입장과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미국과 북한은 오후 5시45분 시작된 수석대표 회의에서 만났다. 수석대표 회의 전 남북, 한.중, 북.중, 미.중 등 양자 접촉이 속속 진행됐지만 별도의 북.미 접촉은 없었다. 북.미 대표는 원탁 테이블 옆자리에 앉아 간간이 의견을 교환했다고 한다. 그나마 45분 만에 끝났다. 1단계 회담 때는 13일 동안 13번 정도 만났고, 회담 시간은 통상 1시간을 넘겼다.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회담 후 "한반도 비핵화 실현 과정에 대해선 각 측에 중대한 이견이 있다"고 설명했다.

◆ 관건은 경수로=회담 타결의 최대 난제는 경수로라고 회담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경수로 건설은 돈과 기술에 달려 있다. 한국이 돈을 대고 미국이 기술을 주지 않으면 북한은 경수로를 가질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은 이날 남북 양자접촉에서도 경수로 문제를 끄집어 냈다고 회담 관계자는 전했다.

◆ '융통성' 나올까=따라서 회담 성패는 미국과 북한의 유연성에 달려 있다. 서로의 원칙을 얼마나 좁히느냐의 문제다. 김계관 부상은 이날 "원칙을 지키겠다"면서 "필요할 경우 융통성을 발휘할 방침"이라고도 했다. 송민순 차관보는 "참가국들은 지난 1단계 회담의 막바지에 끌어낸 4차 초안을 가급적 최소한 수정해 공동문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북한 역시 회담 성사에 적극성을 보인다는 의미다. 그런 만큼 한국 대표단은 미국과 북한 양측의 융통성을 이끌어낼 가능성을 고대하고 있다.

송 차관보는 이날 저녁 참가국 대표단과의 만찬에서 김계관 부상과 함께 계속해 맥주를 들이켰다고 한다. 그는 언젠가 "긴장할 때면 갈증을 느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긴장감이 어떻게 풀려나갈지는 14일 6자 수석대표회담에서야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베이징=최상연.채병건 기자
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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