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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도심, 문화로 리모델링 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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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대전의 원(原)도심 한복판에서 6년 가까이 굳게 닫혀 있던 대전지방보훈청 별관(등록문화재 제100호)의 문이 이달 23일 활짝 열린다. 그곳에서 건축과 미술의 만남을 표방하는 이색적인 전시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아시아건축연구실(ATA)과 대전시립미술관이 주최하는 '광복 60주년 기념 열린 미술관:산책, 건축과 미술전'이 그것이다.

이 전시에 지역 문화계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도심의 문화유산 건축물에서 개최된다는 점 때문이다. 또한 작가.국가기관.시립미술관.대학연구실.기업.자원봉사자들이 힘을 모아 전시를 마련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오랫동안 외면당했던 건물의 외벽에서는 영상설치작업이 빛을 내고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을씨년스럽던 건물을 채우는 이 전시는 이미 일반 시민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건축을 전공하는 필자도 활기 잃은 원도심에서 일어나는 이 전시를 주목하고 있다.

근대 이후 대전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해온 원도심은 1988년부터 개발된 둔산지구가 새 도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급속히 쇠퇴하고 있다. 원도심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시청.법원 등 굵직한 업무기능은 대부분 둔산지구로 이전하였고 주거기능도 그 뒤를 따랐다. 원도심의 상인들이 상권의 위축을 피부로 느낀 지는 이미 오래다. 이런 원도심의 문제는 대전.울산.전주 등 신시가지를 조성함으로써 급격히 팽창하는 우리 도시들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전 원도심의 활성화를 위해 계획된 사업 건수가 120건을 넘는다는 사실이 문제의 다급성을 말해준다. 그간 제시되어온 원도심의 활성화 방안들은 주로 경제적 해법들이었다. 한 마디로 재개발을 통해 상권의 덩치와 힘을 키우자는 것이다. 그러나 원도심을 촘촘히 조직하며 활기를 유지해주고 있는 가로 상가와 도심 주거를 쓸어버리는 재개발이 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애써 진행한 재개발이 원도심의 특색을 지우고 도심 공동화라는 또 다른 문제점을 야기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사실 원도심의 문제는 경제적인 측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원도심과 그 주변에 사는 시민들이 문화의 현장에서 멀어지는 것은 또 하나의 문제다. 원도심에는 아기자기한 전시장과 공연장들이 있지만 대전을 찾는 주요한 전시나 공연은 대부분 신도심에 세워진 대형 전시장이나 공연장에서 열린다. 원도심은 경제적으로 위축되고 문화적으로도 소외된 지역이 되고 있다.

그래서 대전 원도심의 한 건물을 전시장으로 하는 전시회의 소식은 더욱 반갑다. 앞으로 이런 문화행사가 자주 열린다면 원도심이 잃었던 활기를 되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시민들의 일상이 새겨져 추억이 된 장소를 유지하면서도 경제를 되살리는 해법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이제 문화의 따스한 눈으로 도시를 바라보자.

<본란은 16개 시.도의 오피니언 리더 74명이 참여해 결성된 중앙일보의 '전국 열린 광장' 제3기 위원들의 기고로 만듭니다.>

한필원 한남대 교수.건축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