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의 시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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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내설악 오세암 같은 곳에 들어가 조용히 혼자서 지낸다면 무슨 책을 가지고 갈 것인가 생각해본다.
성서도 불경도 좋지만 문학서적, 그것도 시집 한권만을 가지고 가고싶다.
왕유의 것도 좋지만 꼭 한권만 택하라면 도연명의 것을 취하고싶다.
정치라는 악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해 전원으로 돌아가 술을 즐기면서 가난을 탓하지도 않은 점은 공통이지만 왕유는 불도에 심취한 반면, 도연명은 다섯아들을 두었으나 다 똑똑치 못해 나이 열세살짜리는 6과 7을 구별못하고, 막내는 아홉살이 되어도 배와 밤만을 조르는, 요새말로 정신장애자였다. 그 아비로서의 괴로움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적인 아픔을 안겨준다.
30대초반에 고향에 돌아가 스스로 호미와 삽을 들고 땅을 파면서 노동의 쾌락을 손수 느끼고 어둠깔리는 때가되면 이웃사람들과 더불어 술을 나누면서 주고받는 풍경이 눈에 선하게 보인다. 신을 부정하는 사람도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는 그를 부정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긴 장마 속 마루에 홀로 앉아 잔을 드는 풍경은 한폭의 그림이라 하겠다.
윤태림 <경남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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