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남자들께 드리는 사소한 말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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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형경
소설가

약 1년쯤 전부터 이 지면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작할 때의 의도는 한없이 벌어져가는 남녀 사이 간극을 메울 수 있었으면 하는 거였다. 현실에서 만나는 여성들은 남자의 실체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무지했다. 그들은 남자 인간을 보는 게 아니라 내면의 남자 환상을 원하고 있었다.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여성들이 자존감으로 무장한 채 주체적으로 변해가는 동안 남자들은 자기 내면을 알지도 표현하지도 못한 채 여자들을 못마땅해 하는 상태로 머물렀다. 그런 이들이 부부가 되어 자녀에게 심각한 심리적 문제를 물려주었다. 내가 안타까웠던 이들은 생을 시작하기도 전에 고통부터 떠안는 청소년 청춘들이었다. 그들을 도우려면 우선 부모 세대가 변해야 한다고 믿었다.

 어쨌든, 이 지면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두어 달쯤 흐른 후 한 지인 남성이 물었다. “이제 남자들한테서 전화 안 오지?” 놀라워라. 이전에는 안부 묻듯, 어장 관리하듯 연락하던 이들의 전화가 모두 끊긴 상태였다. 지금까지도. 사실 그 일은 고맙다. 불필요하게 에너지가 낭비되던 구멍 하나가 사라진 셈이다.

 다음으로 미안한 마음이다. 남자들이 숨기고 싶어하는 내면을 꺼내 보이면서 읽는 이들을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정신분석이나 심리상담을 받는 사람이 맞닥뜨리는 첫 번째 고비는 나르시시즘적 페르소나가 파괴되는 지점이다. 아프고 슬프고 지질한 내면과 마주칠 때, 그런 자신을 인정할 수 없어 열 명 중 서너 명은 그 작업을 중단한다. 두 번째 고비는 내면의 불안이나 분노가 인식되는 지점에서 찾아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배척당할까봐 두려워 억압해둔 성장기 감정들이 심리 치료 현장에서 뒤늦게 터져나온다. 그 감정을 회피하면서 작업을 중단할 때 그들 내면에는 여전히 힘있는 과거 대상들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존재하는 셈이다. 이 지면을 시작했을 때 또 다른 남성이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용감할 수 있지?” 남성중심 세상의 반향이 두렵지 않은가 하는 질문이었고, 내면의 불안이 감지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감사와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이 지면의 글이 남자를 불편하게 했다면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내가 의도했던 일이다. 모든 문제를 외부로만 투사하는 남자들의 마음을 들쑤셔 어떻게든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고 싶었다. 내게 새해 소망이 있다면 ‘여자 소설가’로서 이 남성중심 세상에서 추방당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