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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교육」이 시급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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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본격적인「진로교육」의 실시가 시급하게 요구되고 있다. 해마다 입시철만 되면 이나라 교육이 앓고있는 위중한 증세를 지켜보게 되고, 진노교육은 이러한 중환을 다스리는데 효과적인 치료법의 하나가 될 것으로 학계는 보고있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선 이렇다 할 진로교육이 실시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입시철마다「점수따기」와「학과맞추기」에 혼신을 다할 따름이라고나 할까.
외국의 경우, 진로교육은 일찌기 유아교육에서부터 시작된다.
특히 구미에선 어려서부터 「직업」에 대해 눈을 뜨게 하고있다.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일」들과「역할」들이 있다는 사실을 교육프로그램 속에 자연스럽게 넣어서 가르치고 있다.
이렇듯 직업세계에 눈을 뜨는 시기를 지나면 탐색단계에 이른다. 국민학교 고학년까지의 풍성한 공상기를 거쳐 불확실한대로 현실성이 가미된 중학과정의 감정적인 선택기를 맞이한다. 이들이 고등학교시절(또는 대학시절)을 거치면서 실제 직업종사자들까지 만나 체험을 쌓는 현실적 탐색단계에 이를때면 이미 탄탄한 직업관을 형성하게 된다.
한국교육개발원 홍기형박사(사회교육)는『미국에선 중학과정부터「진로주간」을 마련, 자신의 인생과 직업을 골똘히 생각하고 스스로 직업의 적격성을 찾는 노력을 유도하는 행사까지 벌이고 있다』고 소개한다. 그는 직업에 대한 연구가 독립된 학문영역으로 발전, 온갖 출판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빵가게를 하고 싶은 사람에겐 빵가게를 하는데 필요한 모든 정보가 손쉽게 제공되고 있다고.
그러면 우리나라 진로교육의 현황은 어떤가.
우선 학생들로 하여금 뚜렷한 직업의식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 직업세계에 대한 탐색은 커녕 그 전제조건인 자기분석도 제대로 안된채 내던져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 빈자리를 고질적인 입신출세주의가 점령, 횡포를 부리고 있다고 한학자는 꼬집는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업의 종류는 모두 2만여종.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직업의 종류를 아는대로 써보라고 하니 대다수가 50종을 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느 학생은 농업·공업·수산업 등으로 산업분류를 하고 있을 정도로 직업이 뭔지를 모르는 상태였다고.
아는것이 법관이나 의사…뿐이니 이런 상황이 입시철마다 북새질 치는 현상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직업훈련연구소 이정근박사(기술교육)도 이러한 현상을 우려하면서 학교 교육을 통해 인생관과 진로관을 분명히 심어주는 일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요즈음의 학생들이 인생의 목적과 꿈이 결여된 것같아 가슴 아프다고 말하고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는한 한눈팔 사이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한가지 주의할 점은 진로교육이 단지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인생의 설계 및 실천을 전제로 한 교육이란 점에서 「평생교육」과 맺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정년퇴직자의 진로교육 또한 중요하고도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의학의 발달과 생활환경의 개선으로 인간의 평균수명은 연장되고 그 결과 퇴직연령을 맞은 사람도 상당기간중 사회참여활동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의 일반적인 추세다.
이제 정년퇴직은 인생의 활동기로부터의 종결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며 이들의 사회적 부적응을 극복하고 퇴직후의 현명한 준비를 위해서는 적절한 진로교육 프로그램이 요구되고 있다.
실제로 캐나다의 어느 주에선 퇴직전의 교육자를 상대로 「눈물없는 정년퇴직」(Retirement without tears)이란 슬로건 아래 진로교육을 실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교육자의 경우, 특히 교직이 갖는 특수성때문에 다른 직종의 퇴직자보다 더 큰 생활상의 변화와 충격을 경험, 실패에 빠지기 일쑤다. 그러면 악화된 현땅의 타개책은 무엇인가.
학자들은 우선 교육정책의 전환을 바라고 있다. 학교 교육의 포커스는 진로교육에 맞춰 하나의 조그만 지식을 가르치는데도 직업세계와 연결시켜 가르치는 세심한 교육방법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진로교육을 이끌어갈수 있는 교사의 양성과 부단한 재교육이 필요하다. 사회교육의 일환으로서 성인을 위한 진로교육 프로그램의 개발도 함께 준비되어야겠다.
또하나 시급한 문제는 자료개발을 서두르는 일이다.
추진해볼 마음은 있어도 효과적으로 밀어줄 자료가 없다.
기초자료로서 한가지 비교할만한 예가 있다. 미국의 경우 직업별·성격·취업장소·자격요건·고용전망·보수 및 작업환경에서 문의처까지 자기수준에 맞춰 편리하게 찾아볼 수 있는 방대한『직업전망사전』이 편찬된 것은 이미 40여년전인 1939년. 그후 4차 개정판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작년부터 중앙직업안정소에서 『직업사전』편찬에 착수했으나 예산부족으로 10년은 걸릴 사업으로 지연되고 있다. 10년후면 직업도 많이 바뀌어 바로 개정판 내기에 바쁠 판이다.
이제「진로교육」의 중요성은 전에 비해 그런대로 광범위하게 인식돼가고 있는 상태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빨리 효과적으로 실천에 옮기느냐에 달려있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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