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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중 사진 찍는 관객 뭡니까 … 바렌보임 '버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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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탈리아 밀라노 ‘라스칼라’를 9년여 이끌어 온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 [AP=뉴시스]

세계적인 지휘자이자 천재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72)에게 이번 주는 각별했다. 세계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로 그가 9년여간 이끌어온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스칼라에서 보내는 마지막 주였기 때문이다. 23일이 고별 공연이었다. 오랜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그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곤 했던 라스칼라와의 이별다웠다.

 그러나 전날인 22일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바렌보임이 관객을 나무라는 일이 벌어졌다. 사진 촬영 때문이었다. 바렌보임은 이날 여러 차례 사진을 찍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럼에도 마지막 공연 전날이었으니 카메라를 꺼내든 관객이 적지 않았다. 거듭된 요청에도 사진 촬영이 이어지자 바렌보임이 폭발했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6번(D845)을 연주하던 중이었다.

 그는 객석을 쏘아보곤 이렇게 말했다. “여성분. 나는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데 당신은 나를 전혀 존중해주지 않는군요. 콘서트 중에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교육을 잘못 받은 거예요. 공연 때마다 부탁을 합니다. 처음엔 좋은 말로 하지요. 그러나 이젠 심각하게 말하는 거예요.”

 현지 언론은 한 젊은 여성 관객이 특히나 눈총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음악계에선 이날 바렌보임의 행동에 대해 “절제돼 있긴 하지만 세계적인 재즈 피아니스트인 키스 재럿이 2007년 분노를 터뜨린 것과 닮은꼴”이라고 보고 있다. 재럿은 그해 이탈리아의 움브리아 재즈 축제에서 사진 촬영하는 이들에게 “카메라를 가진 XX들, 빌어먹을 전원을 당장 꺼”라고 외쳤다. 재럿은 이 때문에 6년간 움브리아 축제에 출연하지 못했다. 2013년에야 공연을 재개했는데 어둠 속에서 연주했다. 아예 촬영을 못 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정경화

 사진 촬영이 연주 흐름만 끊는 게 아니다. 저작권 문제도 걸려 있다. 지난해 독일의 루르 피아노 축제에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크리스티안 짐머만이 연주 도중 퇴장한 일이 있었다. 한 남성 관객이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하는 걸 알고 멈춰달라고 요청했으나 아랑곳하지 않자 아예 무대를 떠난 것이다. 그는 잠시 후 돌아와선 “음반 녹음 계약을 못 한 일이 있는데 ‘유튜브에 공연 영상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고 양해를 구했다. 영국의 한 희극배우는 공연 중 한 관객의 휴대전화를 부수기도 했다.

 공연 중 기침도 논란거리다. “기침 소리 없는 데서 공연해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는 피아노 거장인 알프레드 브렌델은 객석을 향해 “기침을 멈추지 않으면 내가 연주를 멈추겠다”고 말한 일이 있다. 또 아주 여리게 연주할 때 기침 소리가 나자 “당신들은 내 연주를 들을 수 없지만 나는 당신들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달 초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가 12년 만에 런던에서 공연을 하다가 한 아이가 발작적으로 기침을 하자 아이 부모를 향해 “더 큰 다음에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가 격론을 불러일으킨 일도 있다. 이 때문에 영국 BBC방송이 주최하는 클래식 음악 축제인 ‘프롬스’에선 한때 “기침이 콘서트를 망친다. 먹고 마시고 얘기하고 디지털 알람이 울리고 사진을 찍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할 정도였다.

 소수긴 하지만 객석의 분위기를 용인하는 이도 있다. 작곡가 존 케이지의 ‘4분33초’가 그런 작품이다.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됐는데 악보엔 ‘조용히’(Tacet·타셋)라고만 돼 있다. 공연장에서 나는 모든 소리 자체가 음악이란 의미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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