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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완의 My Sweet Zoo <1> 한국말 할 줄 아는 코끼리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에버랜드 동물원에 사는 아시아 코끼리 ‘코식이’는 말을 한다. 말문이 트인 것이 2004년이었으니 벌써 10년 가까이 됐다.

 코식이는 1990년 어린이대공원에서 태어났다. 3년 뒤 에버랜드 동물원으로 오게 됐는데, 그때만 해도 꼬마에 불과했던 코식이가 스물세 살이 된 지금은 키 3.5m 몸무게 5.5t으로 제법 어른 티가 난다.

 코식이가 처음 말을 하는 걸 들은 건 그를 담당하는 김종갑 사육사였다. 2004년 어느 가을 아침. 여느 때처럼 사육장 안을 청소하고 먹을 것을 준비하고 있는데 별안간 코끼리 사육장 쪽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나밖에 없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말소리의 주인공이 코끼리라는 건 김 사육사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김 사육사가 곧장 나에게 달려와 보고를 하기는 했지만 나도 처음엔 믿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김 사육사의 보고가 올라왔다. 혹시나 해서 사육장에 가 보니 진짜로 코식이가 말을 하고 있었다.

 코식이가 구사하는 단어는 ‘좋아’ ‘안돼’ ‘누워’ ‘아직’ ‘발’ ‘앉아’ ‘예’ 등 일곱 단어 정도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좋아’다. 제일 먼저 구사한 말이기도 하다. 코식이를 칭찬하고 쓰다듬으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 ‘좋아’라는 말인데, 그걸 가장 먼저 배운 것 같다는 게 사육사의 설명이다.

 코식이는 왜 말을 하는 것일까? 그 비밀을 풀기 위한 연구가 글로벌 차원에서 시도된 적이 있다. 2010년 가을 독일의 생물 물리학자 다니엘 미첸 박사와 코끼리 음성 의사소통 전문가인 오스트리아의 앙겔라 호아그바트 박사가 에버랜드 동물원과 공동으로 코식이의 발성 모습과 발성기관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진은 동물원에 두 달 동안 머물며 코식이와 함께 생활했다.

 이들이 연구한 결과가 지난해 11월 생물학계의 저명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러지에 발표됐다. 학자들은 논문에서 코식이가 말을 하게 된 이유를 17년째 사육사와 함께 동고동락을 하면서 코식이가 사육사의 모든 것을 따라 했고, 소리조차 닮고 싶어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코식이가 사람의 말을 따라 할 때는 아시아 코끼리가 내는 194개 울음소리와 매우 다른 주파수를 사용하며, 이것이 사육사의 음성 주파수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또한 연구 팀은 코식이가 사육사와 오랫동안 함께한 점에 착안해 이러한 음성 학습이 사회적 유대를 강하게 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혀냈다.

 그러니까 코식이가 말을 하게 된 건 사육사의 헌신적 사랑이 낳은 결과라는 뜻이었다. 코식이가 어렸을 때 김 사육사는 하루 종일 퇴근도 하지 않고 코식이 옆에 붙어살았다. 코식이보다 늦게 자고 먼저 일어났고, 눈 뜨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도 코식이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었다.

 코끼리는 침으로 애정을 확인한다. 김 사육사는 인사할 때도 침을 발라 코에 묻혀 주고, 과일을 먹을 때도 한 입 베어 물어 침을 묻힌 다음 건네줬다. 어느 순간부터 코식이도 사육사의 온몸을 침으로 발라 줬다. 이 과정에서 사육사와 코끼리 간에 신뢰가 형성된 것이다.

 전적으로 코식이 마음이겠지만, 나는 코식이가 새로운 말을 했으면 좋겠다. 이왕에 말을 한다면 이번에는 ‘사랑해’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사랑해’라는 말만큼 달콤한 말은 없으니까 말이다.

권수완 에버랜드 동물원장·전문위원
대학에서 수의학을 전공했고 1987년 에버랜드(당시 자연농원)에 입사해 지금까지 동물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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