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윤회 문건이 사실이 아니란 걸 개각으로 보여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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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근혜 대통령이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의 사의를 받아들임으로써 개각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윤회 문건’ 유출사건으로 드러난 국정난맥과 혼선,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인적 개편이란 처방을 꺼내든 대통령의 판단은 옳다. 문제는 개편의 성격과 방향이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은 국정운영과 인사 스타일부터 180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개각이 그 첫걸음이 돼야 할 것이다. 문건 사건을 겪으면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후 가장 낮은 수준인 39.9%(리얼미터, 12월 셋째 주 조사)까지 떨어졌다. 비선(秘線) 실세들의 국정 농단 의혹, 대통령의 최측근과 친동생까지 나서 벌이는 권력 암투에 국민이 실망하면서 등을 돌린 결과다. 검찰이 아무리 “비선들의 국정 농단은 없었다”는 수사결과를 내놓아도 국무총리·장관 후보자들의 잇따른 낙마와 되풀이되는 인사 난맥을 보아온 국민의 의혹을 속 시원하게 뚫어주지 못하고 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다.

 이런 때일수록 백 마디의 말보다 과감한 행동과 실천으로 정면돌파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비선 실세들의 국정 농단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이번 인사를 통해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수첩’부터 버리는 게 중요하다. 누가 봐도 ‘적임자다’ ‘쓸 만한 사람을 앉혔다’는 공감할 만큼 투명한 인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한 구멍 난 곳을 메우는 정도의 땜질식 처방으론 ‘신뢰의 위기’를 돌파하긴 힘들다. 국정운영의 밑그림을 다시 짠다는 각오와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총리를 포함한 내각과, 대통령 비서실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수술 없이는 국정 동력을 되찾기 어렵다. 특히 군인·사학연금 개혁을 둘러싼 당정 간 헛발질에서도 드러났듯이, 총리가 갈등 조정과 이견 조율에 발벗고 나서는 게 시급하다. 청와대는 당·정·청과 여야를 넘나들고, 보수와 진보를 두루 아우를 수 있는 화합형·정무형 총리를 중용하라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정 정파나 지역에 치우친 인사로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힘들 뿐 아니라 오히려 더 큰 불신과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문건의 진위여부와는 별개로 청와대에 대한 불신을 키운 정윤회 문건 사건의 최종적인 책임은 대통령 비서실장이 져야 한다는 게 시중의 여론이다. 특히 100여 장의 청와대 문건이 시중에 떠돌아다닌 사실을 알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청와대로선 입이 10개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런 비서실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어찌 기강이 바로 설 것이며, 이런 청와대를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아울러 청와대가 국정운영을 위한 토론의 장으로 변모해야 한다. 대통령은 보고서를 읽는 시간을 확 줄이고 대신 장차관과 수석·비서관들을 불러 격의 없이 토론하는 시간을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불러 시중 여론을 듣는 자리를 수시로 마련한다면 ‘문고리 권력’이란 말도 사라질 것이다.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는 건 대통령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