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님이 남긴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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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결혼하기 전에 처음 시댁의 외할아버님을 뵙고 시어머님 되실 분의 아버님이구나하고 금세 알 수 있었을 정도로 할아버님의 모습은 그이와 너무나 똑같았다. 결혼 후 자주 찾아뵙지 못했지만 인자하신 모습은 어머니께 듣던 할아버님의 생활과 함께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지난해말 예나 다름없이 내외분이 두 손을 꼭 잡고 찾아오셔서 하룻밤을 묵고 내려가셨는데 며칠 뒤 새벽에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처음 듣는 가까운 분의 죽음은 너무나 큰 충격이어서 놀라고 비통해하는 어머니를 그저 망연히 바라볼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춥던 날씨가 수그러지던 장례 날, 온 가족이 광릉내로 내려가 할아버님이 다니시던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렀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되는 순서마다 할아버님의 행적은 실로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할아버님은 빈농의 7남매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의 기독신앙을 본받아 기독가정과 결혼하여 농사를 뿌리치고 교회를 세울 수 있는 곳을 찾아 땔나무를 팔아가며 어렵고 힘든 생활을 계속했다.
낙후되고 어려운 농촌생활을 보고 버려진 산을 개간하여 과수원을 만들고 밭을 일구어 고구마를 심는 등 몸소 모범을 보이면서 잘사는 농촌을 만들고자 애썼다.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성실하게 열심히 살다간 그분의 행적은 장례식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의 슬픔을 딛고 희망찬 「삶」의 교훈을 던져주었다.
하나의 빛이 꺼져버린 뒤 다시금 캄캄한 현실앞에 그 빛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깨닫는 침묵의 소용돌이가 장례식장을 휘돌았다.
70평생 농촌의 숨은 봉사자로 애써오신 할아버님을 손수 가꿔오던 포도밭 양지녘에 마련한 유택에 모셔두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잘사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마음에 깊이 새겼다.
이제 돌을 지난 주혁이가 말귀를 알아들을 만큼 크면 할아버님 얘기를 꼭 해주어야지.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257의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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