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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버는게 그렇게 어려운줄 몰랐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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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겨울방학동안 대학생들이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값진 경험을 쌓고 있다.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따르기도 하고, 백화점 고객에게 친절을 서비스하기도 하며, 살을 에는 겨울 밤거리의 치안을 맡기도 한다.
이들은 따듯한 격려도 받았으나 사회의 냉엄함을 체험했고 직업의 고귀함과 일한 대가를 받는 보람도 느꼈다.
아르바이트대학생들이 사회모퉁이에서 겪는 이모저모를 좌담을 통해 들어본다.
▲임승택군=각 계의 취업전선에서 뛰는 여러분들을 만나 반갑습니다.
부직난에 허덕이는 우리들의 실상을 털어놓아 봅시다. 진지한 얘기를 나누려면 저의 포장마차에라도 초대했어야 했는데…(웃음).
▲최명선양=저는 지난달 l5일부터 S백화점에서 판매보조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일거리가 바쁜 코너를 옮겨가며 손님을 맞아요.
말로만 듣던 사회에 몸소 부딪쳐 경험을 얻겠다고 시작했지요.
▲전인수군=저는 작년 10월부터 노량진에 있는「장폴 82」란 경양식집 바텐더로 일합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이젠 제법 익숙해졌지요.
▲이향미양=저는 길거리의 파수꾼이예요(웃음). 매일 상오7시30분무터3시간. 하오4시30분부터 2시간씩 동대문근처의 교통정리를 맡고 있습니다.
▲이세우군=저는 강동경찰서 성내파출소 소속 방범대원입니다. 청소년 선도순찰이 주요업무지요. 매일 하오6시30분부터 5시간동안은 여러분들도 제앞에선 조심해야 할 거예요(웃음).

<익숙해진 바텐더>
▲송만숙양=저는 외국인 중학생 3명을 가정지도했어요. 우리 풍습을 알려주며 친구가 되어 주는게 주업무였지요.
▲임=그리고보니 제가 가장 나은 편이군요. 어쨌든 사장이니까요(웃음). 저는 작년 12월 신사동에서 포장마차를 개업했는데 리어카를 뚝딱거려 포장마차흉내를 내는데도 거금 18만원을 투자했지요. 제 경우 집안사정이 곤란하게돼 이왕 부업에 시간을 빼앗길 바엔 힘들더라도 돈벌이가 괜챦은 일을 찾았었지요.
▲이세=학비마련에 도움을 받으려고 시작했는데 의외로 큰경험을 갖게 됐어요. 대부분의 시민들이 경찰관에 대해 무섭고 억압하는 존재로만 생각해 왔는데 막상 그들을 겪어보니 그들의 어려운 여건을 실감할 수 있었어요. 술 마시고 소란부리는 사람들을 달래 집으로 보내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줄은 몰랐어요.

<8시간씩 서서근무>
▲최=어떤 일인들 쉽지야 않겠지만 하루8시간을 서서 근무하는 일이 가장 힘겨워요. 다리에 근육이 생길까 걱정도 했지만 이젠 단련이 됐어요(웃음).
▲이향=아침일찍부터 추운 길거리를 지키는 일도 쉽지 않았어요.
덕분에 늦잠자는 버릇은 없어졌지만…새벽 출근길에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일터로 나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더군요.
▲전=제 경우 손님에 대한 서비스가 생명이죠. 조그마한 실수도 용서않고 반말로 나무랄땐 야속하기도 했죠. 학교동급생이나 친구들이 찾아와도 될수록 모른 척 해야 돼죠. 외상값이 올라가기 때문이죠(웃음).
▲임=제가 사장이라고 자랑은 했지만 사실 포장마차는 무허가영업이기 때문에 늘 불안하고 상전이 많아요. 경찰관이나 방범대원, 부근 업소주인들이 나타날 땐 뜨끔하죠. 한번은 경범죄 처벌법 위반으로 단속을 당해 벌금 4천원을 물기도 했죠.
▲이세=그 관계는 제 관할입니다(웃음). 얼마 전 경찰간부와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영세노점상인들을 무리해서 단속하지 않도록 건의를 했었습니다.
▲박현주양=처음 교통정리를 나섰을 땐 쑥스러워 호루라기도 제대로 못 불었어요. 이젠 주차위반하는 운전사에게 호통을 칠 정도가 됐죠. 어른들이 앞장서서 교통신호를 어길 땐 얄밉기도 하죠.
▲이세=실제로 부딪쳐 본 이 사회는 냉정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어요. 옆집에서 도둑을 맞아도 우리 집만 무사하면 괜찮고 어린이가 개에 물려 끌려가도 구경거리로만 생각한다는 거예요.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다고는 하지만 하루는 순찰도중 고교 1년생이 운영하는 포장마차 술집을 발견했어요. 좋은 말로 타일렀더니 다음 날엔 튀김집으로 바꾸었더군요. 얼마전엔 동료대학생 방범대원이 칼 든 강도를 붙잡아 개가를 올린 적도 있어요. 저희들로서는 큰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임=포장마차는 보통 하오6시부터 장사를 시작해 새벽3시쯤까지 계속하는데 하루 매상이 평균3만원 정도예요. 순수입은 1만5천원 정도죠. 지난 연말엔 하루매상을 8만원까지 올려 짭짤했죠.
▲최=하루8시간 근무에 일당 4천원이에요. 지난 연말엔 첫 월급 10만원을 받아 부모님께 내복을 사드리고 절반 정도는 저축을 했어요.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고 있으므로 제 수입은 대부분 취미활동이나 용돈으로 쓰여지는 편이지요.
▲이세=방범근무는 일당 5천원씩, 한달 5만원이예요. 아직 첫 월급도 못 받았지만 등록금으로 쓸 생각입니다.

<부모님 내의 사드려>
▲박=15일 뿐이어서 좀 짧은 것 같아요. 일당 5천원씩인데 쓸 곳이 너무 많은것 같아요.
▲임=저는 그 동안 32만원정도 저축이 됐어요. 등록금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최=저는 이번 기회를 통해 돈의 가치를 새삼 느꼈어요. 전에 부모님께 용돈을 타서 쓸 땐 몰랐는데 이젠 한푼을 쓸 때도 다시 생각하게 되고 부모님의 은공이 새삼 느껴져요.
▲이세=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느낀 어려운 점도 많습니다만 무엇보다도 걱정은 아르바이트의 단명성입니다. 지속적인 학업의 수단이라면 계속 일자리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향=아르바이트 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학생들을 울리는 업주의 횡포도 심해요.
일정한 수입을 보장한다고 해 놓고 기본급은 형편없이 적고 능력껏 손님에게 서비스하고 벌라는 식이죠.
또 많은 직종이 수입은 적고 시간만 많이 빼앗는 외판직종이라 고충이 큽니다.
▲전=아르바이트의 어려움은 그 기한과 일의 대가에 대한 불확실성입니다.
제약회사의 경우 간단한 실험을 시키면서도 대학간에 차이를 두어 일부학교의 학생들만 채용한다고 합니다.
또 소규모 영세업자들은 급료를 일이 끝나면 주겠다고 해 놓고 아예 달아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이 경우 학생들에게 사회에 대한 불신감만 심어주는 셈이죠.

<횡포업자 단속을>
▲박=급료도 노력의 대가에 훨씬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아요.
당국에서 주선해 주는 일자리도 방범대원이나 교통정리처럼 단순노동밖에 없는지 다시 한 번 고려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임=학생신분이라면 학업이 최우선인데도 일부 학생 중엔 심심풀이 삼아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경우가 있어「배부른 아르바이트」란 비난을 듣기도 하지요.
▲전=실제로 제가 일하는 업소에서도 금년 들어 여대생 6명이 섣불리 덤벼들었다가 1주일도 못 채우고 떠났죠.
▲송=아르바이트 학생이라고 해서 일반인들이 동정심을 갖고 대접해 주리라는 기대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직책을 맡은 이상 자신의 일에 책임과 성실을 다해 스스로 인정받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임=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서로에게 큰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새 학기엔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캠퍼스에서 만납시다.

<정리=한천수기자>
참석자
박현주(20·건대 화학과2년·교통정리원)
송만숙(21·고대불문과2년·외국인가정교사)
이세우(21·세종대경영과1년·방범대원)
이향미(20·건대법학과2년·교통정리원)
임승택(25·홍대공예과3년·포장마차경영)
전인수(21·중대무역학과2년·경양식집종업원)
최명선(22·숙대체육교육과3년·백화점판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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