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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고 때론 안쓰러운 그 이름, 어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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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인생의 본격적인 곤경은 어쩌면 어머니의 아늑한 품으로부터 찢겨져 나오는 순간 시작되는 것일 게다.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문학은 그래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자주 그릴 수 밖에 없다.

 우울한 뉴스가 많은 세밑, 모성(母性)을 테마로 한 시집이 나왔다. 시인 49명의 신작시를 모은 『흐느끼던 밤을 기억하네』(나무옆의자·사진)이다.

 시집은 3부로 구성돼 있다. 고은·정진규·송수권·김종해·문인수·정호승 등 연륜 있는 시인들은 1부로, 유안진·강은교·문정희·김승희·이진명·김이듬 등 여성 시인은 2부에 묶었다. 3부에는 도종환·박주택·함민복·장석남·손택수 등 상대적으로 젊은층이 포진해 있다. 화려한 면면이다. 시인 각자의 체험과 생각이 다르다 보니 시집 분위기가 다채롭다.

 가령 김이듬 시인의 작품 ‘파사칼리아’에 나타난 엄마의 모습은 격렬하고 속도감 있는 시인의 평소 시풍처럼 자애로운 어머니상에서 동떨어져 있다.

 ‘나의 서곡은 우울하고 비참했다/두 여자를 미워하느라 삶을 싸우며 계속했다’.

 친어머니와 새어머니 사이에서 겪었던 괴로운 개인사를 솔직히 드러낸 것이다.

 물론 대종을 이루는 것은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을 표현한 시들이다. 문인수 시인은 몇 해 전부터 써온 어머니 이름을 딴 연작시 ‘조묵단전(傳)’에 ‘멍텅구리 배 한 척’이라는 부제를 붙인 작품을 내놓았다.

 ‘김해녹십자노인요양병원./99세, 어머니의 바닥은 지금/인조가죽 메트리스.//거기 전심전력, 전적으로 당신 한 몸 책임지고 앉아 있다, 누워 있다,/누웠다, 앉는다,//누웠다, 앉았다, 누웠다, 앉았다 해도 도무지//안 가는,//아, 멍텅구리 배 한 척,//간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잃고 동력 없는 멍텅구리배 같은 메트리스 위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어머니의 모습, 안쓰럽다.

 시작 메모가 강렬한 경우도 있다. 장석남 시인의 작품 ‘말년이란 무슨 말인가’의 시작 메모다.

 ‘내 입술이 처음 닿았을 입술. 내 입술에서 처음 나왔을 이름. 내가 처음 본 사람. 그리고 맨 나중 나의 입술이 닿고 싶은 사람.’ 바로 어머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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