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최고치 새 지평 여는 증시] 중. 이제는 간접투자 시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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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고객 열 명 중 일고여덟 명은 펀드 가입하러 오는 고객입니다."

미래에셋증권 잠실지점 조이선 지점장은 "1년 새 고객들의 투자 패턴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어떤 주식을 골라야 하느냐는 문의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주가지수 사상 최고 돌파는 이런 펀드 투자 고객들이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각광받는 간접투자=적립식 펀드의 인기는 가위 폭발적이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적립식 펀드 수탁액은 7월 말 현재 8조4870억원으로 전달보다 4000억원 늘었다. 매달 4000억~6000억원의 신규 자금이 몰리는 만큼 수탁액 1조원 돌파도 시간 문제다. 적립식 펀드는 매달 예금하듯 주식을 사는 '투자방법'이지 특정 상품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3~4년 전에 첫선을 보였지만 당시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지난해 말부터 대형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창구 판매에 나선 데다 위험 분산 효과가 빛을 발하면서 가입자가 크게 늘었다.

랜드마크투신운용 최홍 사장은 "개인이 주식을 직접 사고 파는 것으로는 더 이상 돈을 벌기가 힘들어졌다는 인식과, 증시의 중장기 전망이 그 어느 때보다 밝다는 점이 어우러져 적립식 붐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저금리 기조의 지속과 주가연계증권(ELS), 일임형 랩어카운트 등 다양한 간접투자 상품이 많이 개발된 것도 간접투자 활성화에 기여했다. 그 결과 주식형 펀드의 수탁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5일 현재 주식형 펀드 수탁액은 15조117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달 10일 14조원을 넘어 선 후 한 달도 안 돼 다시 1조원 넘게 늘었다. 이 같은 증가세는 2000년 이래 가장 빠른 속도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간접투자 계좌 수는 지난달 말 현재 730만 개로 직접투자 계좌수(692만 개)를 28만 개가량 앞질렀다. 간접투자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 증시 떠받치는 기관의 힘=펀드로 들어온 돈은 투신사의 주식 매수용 '실탄'이 된다. 지난달 중순 이후 외국인은 팔자로 돌아서 880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그러나 주가는 잠깐 조정받았을 뿐 상승세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까지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면 주가가 폭락했던 '관례'는 사라졌다. 투신사 등이 같은 기간 8400억원어치를 사들이며 안전판 역할을 한 덕분이다.

여기에 보험사들도 '지원사격'을 가하고 있다. 보험계약자가 납입한 보험료 가운데 일부를 주식 등에 투자하는 변액보험이 인기를 끌면서 보험사들은 5~8월 넉 달간 6696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특히 적립식 펀드는 3년 이상, 변액보험은 10년 이상 투자하는 중장기 자금이라는 게 의미가 있다. 삼성투신운용 임창규 주식운용팀장은 "적립식이나 변액보험을 통해 들어온 자금은 단기 주가 변동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안정적 자금"이라고 말했다.

◆ 산적한 해결 과제=여전히 초단기성 자금이 많은 머니마켓펀드(MMF)나 채권에 주로 투자하는 채권형 펀드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다. 펀드 수탁액 중 MMF가 38%, 채권형이 29%인 반면 주식형은 7%에 불과하다. 일본은 주식투신형이 71%, 미국은 주식형이 54%인 것과는 상당한 차이다.

펀드의 운용 규모가 너무 작은 것도 문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펀드의 평균 운용 규모는 280억원으로 미국의 1조9000억원, 일본의 1600억원에 크게 못 미친다.

증권연구원 김재칠 연구원은 "펀드 규모가 작으면 비용이 많이 들고 분산 투자나 중장기 투자를 어렵게 한다"며 "증시 안정을 위해 펀드의 대형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준현 기자

우여곡절 펀드 시장
'바이 코리아'로 불 붙었지만 부작용
'10억 만들기' 투자 바람에 다시 인기

사상 최고치 돌파의 일등 공신이 펀드다. 200조원 넘게 펀드로 들어온 돈이 증시를 떠받친 것이다. 펀드 투자가 자리 잡기까진 곡절도 많았다.

1999년 '바이코리아' 열풍이 펀드 투자의 시작이다. 현대증권 이익치 회장은 "주가 6000 시대가 올 것"이라며 바람몰이식 마케팅을 펼쳤다. 이 바람을 타고 주가 상승세와 맞물려 펀드 시장은 260조원 수준으로 커졌다. 그러나 지나친 낙관론은 증시에 거품을 잔뜩 끼게 했다. 코스닥에서 시작된 묻지마 투자는 대우그룹 몰락과 함께 주가 폭락을 불렀다. 펀드도 덩달아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당시 펀드들은 수십조원의 대우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등을 사놓고 있었다. 대우가 쓰러지자 투자자들은 일제히 펀드에서 돈을 빼갔다. 펀드 수탁액은 130조원 대로 쪼그라들었다. 이즈음 채권.주식 등을 시세대로 평가하는 시가 평가제 등 펀드 투명성을 강화하는 조치들이 나오기도 했다.

대우 충격이 가셔가던 2003년 펀드시장은 다시 직격탄을 맞았다. SK글로벌의 분식회계와 신용카드사들의 부실이 드러나면서 펀드들도 연쇄 파탄 위기에 처했다. 어렵사리 수습은 됐지만 펀드의 위기를 수차례 목격한 투자자들은 '펀'자만 들어도 손사래를 쳤다.

반전은 유례없는 저금리 기조가 만들었다. 투자자들은 '쥐꼬리만한' 정기예금 이자 대신 펀드를 택했다. 2003년 하반기부터는 '10억 만들기'로 상징되는 재테크 열풍이 불면서 적립식으로 차곡차곡 재산을 늘리는 펀드투자법이 히트를 쳤다.

한국운용 강신우 부사장은 "가치주.배당주.적립식 펀드 등 장기투자 저변이 확산되고 있다"며 "특히 적립식 펀드는 '일종의 주식형 저축'처럼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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