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점포 고층화 바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한 시중은행은 최근 서울 강남 지역의 한 지점을 1층에서 2층으로 옮겼다. 임대계약이 끝나자 건물주가 "은행 지점이 일찍 문을 닫고 저녁시간에 불이 꺼져 있어 2, 3층에 있는 음식점 손님이 줄어든다"며 이전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서울 신촌과 압구정동 등 이른바 '잘나가는' 상권에선 이 같은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점포관리 담당자는 "은행 점포가 무조건 최고의 임차인으로 대접받던 시대는 지나가고 일부 지역에선 오히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은 건물 1층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급속히 깨지고 있다. 주 5일 근무제 확산과 국민의 생활패턴 변화, 은행업무 자동화로 점포를 찾는 고객이 갈수록 줄어듦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다.

은행 지점에 증권사나 보험사 창구를 입주시키는 '점포 내 점포(BIB)'의 확산과 지점 근무 인원 축소도 지속하고 있다. 주 5일제 확산과 국민의 생활패턴 변화, 은행업무 자동화 등이 은행 점포의 고층화.복합화.소형화 추세를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시중은행이 최근 분당.죽전 등 신흥지역에 내는 점포는 대부분 2층으로 가고 있다. 건물주들이 은행의 1층 입점을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 데다 은행 입장에서도 1층이 너무 비싸 2층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2층 이상으로 옮긴 점포는 20개 중 1개꼴에 달하고 있다. 조흥은행의 경우 서울대병원.타워팰리스지점 등 전체 점포(450여 개) 중 5~6%가량이 2층 이상에 위치하고 있다.

조흥은행 CHB 강북PB센터는 아예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 센터 25층에 들어서 있다. 이 지점 관계자는 "최소 1억원 이상의 현금을 굴리는 고객들이기 때문에 노출을 싫어해 오히려 고층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은행 지점 내에 증권사나 보험사의 미니창구를 설치한 BIB도 크게 늘고 있다.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은 최근까지 이런 점포를 각각 13개, 7개 지점으로 늘렸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펀드 상품은 증권사가 은행보다 더욱 다양하게 공급하기 때문에 BIB의 인기가 높다"며 "고객과 은행이 모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처럼 지점을 직접 방문하는 고객이 줄면서 과거 20~30명이 근무하던 점포 인력도 최근 10명 안팎으로 줄어들었다.

개인과 법인 담당을 나눠 업무를 효율화한 데다 외환위기 이후 업무 강도가 세지고, 전산 발달과 인터넷뱅킹이 확대하면서 단순한 업무만 했던 창구 직원(텔러)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김동호.나현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