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네모 세상] 가을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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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에는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는 딸 내보낸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가을볕이 푸근하다는 뜻이다. 들판의 곡식이 영글기엔 한 줌의 가을볕도 소중한 때다.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학원농장(063-564-9897). 15만 평 들판에서 일렁이는 솜털 같은 메밀꽃이 가을볕을 받아 눈부시다. 황토 빛 대지에 가녀린 붉은 대공. 미풍에도 제 몸 못 가누고 청자 빛 하늘에 하늘거리는 하얀 꽃송이. 말 그대로 메밀꽃 천지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메밀 꽃밭도 바로 여기다. 예전엔 어딜 가나 볼 수 있었던 메밀꽃이었지만, 수익이 없는 메밀농사라 요즘은 여간해서 보기 힘들다. 가산 이효석의 고장 봉평에서만 '메밀꽃 필 무렵'의 명맥을 이어왔을 뿐이다. 경관 농업이 농촌의 살길이라는 한 농부(진영호)의 넉넉한 마음은 밭 사이로 산책길마저 내었다. 기러기 오고 제비 가는 백로(9월 7일) 즈음이면, 산허리 손바닥 밭뙈기에도 빨랫줄의 하얀 기저귀처럼 하늘거리던 메밀꽃. 이 가을, 메밀 꽃밭 사이를 거닐며 향수에 젖다 보면 어느덧 가을에 물든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

사진 촬영은 하늘과 이어진 스카이라인을 살펴보면서 눈높이를 조정하는 것이 핵심. 일어서면 보이는 시멘트 건축물이 앉으면 감쪽같이 사라진다. 바로 앵글이 마술. 찾아가는 길은 서해안고속도로 고창IC로 빠져나와 무장 방면 15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이어지는 796번 지방도에서 이정표를 따라 찾아 들어간다.

< HASSELBLAD X-pan 30mm F22 1/4초 Is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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