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든 문화유산」남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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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말대로 기초가 잘 잡히고 정밀하게 쌓인 탑은 의당 생명이 길 것이다. 그런데 이 너무나 당연하고 어김없는 진리가 늘 되새겨진 것은 우리 생활에 그만큼 엉성한 대목이 많다는 이야기가 된다.
사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성과를 내려는 상업주의가 무분별하게 파고들어 학계·문화계에까지 작용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가령 기초 어학에 원전주의가 약한 것이 그것인데 이것이 도가 지나치면 공든 탑은 고사하고 하나 하나 쌓아 올리려는 성실성은 물론, 의욕 자체마저 바보짓이 되고 말 것이다. 산업사회의 능률성·대중성은 우선 공들임보다 대충대충 빨리 많이 이루어 놓는 편이 훨씬 유용할 것도 알만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각계 각층, 각양 각색의 능력과 소질을 간과한 저차원이 문제되지 않을수 없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그런 위험성만이 크다는 것인가. 눈을 깊숙이 안으로 돌려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의 수천년 전통적 문화의 힘은 이 잘못된 풍조를 지탱하고도 아직 맥맥히 숨쉬고 있다.
우선 학계에 공든 책이 도 나돌고 많이 진행중에 있는 현실이 주목된다. 한 예로 20년 적공의 『한국문집기사색인』중 1책이 출간된 것은 무척 경하할 일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신라이래 선인의 갖가지 문집이 수십만권을 헤아리고 있어서 실록등의 원전도 캘수있는 보고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크나큰 문헌자료의 활용을 위한 작업은 당면한 중대과업이 아닐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종래 이러한 기초작업은 노력만큼 공이 덜한 탓인지 기피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연히 개인의 헌신적 힘으로 이 문집색인의 작업은 전개되었던 것이다.이제 그 작업을 펴왔던 윤남한교수가 생명까지 앗긴 뒤에야 햇빛을 보아 나온 것이니 고마움에 앞서 서글픔이 큰 것 또한 사실이다.
근대 백년을 두고 볼때 특히 기초편찬 사업은 예전보다 훨씬 떨어진다.
사전·색인·목록등의 작업이 소홀히 된 우리 학계의 후진성은 하루 빨리 청산되어야 하는데 이「문집색인」은 그 전망을 한층 밝게하는 것이다. 근자 각 연구소 등에서는 각종 기초작업들이 진행중에 있다. 개인적으로도 역대 방목이나 고서목록의 카드를 수만장씩 작성해가고 있는 학구들이 여기저기 대학의 연구실에서 공을 쌓고 있다.
오늘날 뒤늦게나마 기간산업이 크게 확충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기초사업은 국가나 공공기관에서 아직 방치상태에 있다. 전통과 맥이 통하는 기초교육과정, 우수인력의 조기개발 확보등등 기초를 다지는 정책이 아쉽지만 당장 기초 학구들에게 학술진흥기금이나 문화훈장등의 보상을 서두르는 것도 문화적 풍토조성에 기초작업이 될 것이다. 그래야만 통일 전후는 물론 후세에 길이. 남을 공든 문화유산이 갖가지로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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