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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정보 공개 왜 못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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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커닝(부정행위)은 학생들이 하는 짓이고, 선생은 커닝하는 학생을 적발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미국 공립학교의 선생들은 커닝을 도와주거나 학생들의 점수를 높게 고쳐주고 싶은 유혹에 고민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던 모양이다. 시험점수가 낮은 학교는 보호관찰 상태에 놓이거나 폐교되고 교사들은 해고될 수 있는 '고부담 시험'제도 때문이었다. 이쯤 되면 선생들이 부정행위에 나설 유인 요소는 충분하다.

시카고대 경제학과의 스티븐 레빗 교수는 교사들의 부정행위를 잡아내겠다고 덤볐다. 시카고 교육당국은 레빗 교수에게 공립학교 3~7학년(한국의 초등 3~중 1) 학생들의 읽기 시험과 수학 시험 답안지 93~2000년분을 제공했다. 그는 연간 학년당 약 3만 명 학생의 답안지 70만 장, 1억 개 이상의 답안지를 모조리 점검했다. 여기에서 선생의 부정행위 아니면 나타나기 힘든, 희귀한 답안 패턴을 찾아내 전체의 5% 가까운 200개 이상의 학급에서 부정행위가 저질러졌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시카고 교육당국은 이를 근거로 12명의 교사를 해고하고, 많은 교사에게 경고 조치했다.

텍사스 주정부는 92년부터 텍사스 학교 프로젝트(TSP)를 진행 중이다. 13년간 텍사스 공립학교에 다닌 1000만 학생의 각종 자료, 50만 교직원에 관한 자료 등을 전부 공개한 뒤 이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교육정책을 세워 나가겠다는 것이다. TSP가 축적한 자료는 수많은 귀중한 연구 결과를 낳고 있다. 미국 정부도 교육통계조사국이란 부처에서 '교육향상도 평가'라는 자료를 만들어 연구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대부분 선진국이 비슷하다.

교육을 가치중심적인, 인문학적인 개념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에겐 효율성만 중시하는 이런 연구가 못마땅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분석들이 교육의 효율성을 상당히 높였다는 점은 명백하다. 한국에선 이런 일을 기대할 수 없다. 교육 관련 정보가 거의 공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뉴라이트 계열이라는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이 교육인적자원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 단체는 교육부가 초.중.고교의 학업성취도 평가 자료와 대입 수능 데이터(학교별 자료는 포함하되 학생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자료는 제외)의 공개를 거부한 것은 부당하다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교육경제학자 출신인 한나라당의 이주호 의원은 아예 '교육 관련 정보의 공개에 관한 법률'을 국회에 내놓은 상태다.

교육부가 이들 자료의 공개를 거부한 이유는 간단해 보인다. 자료가 공개되면 전국 학교의 서열화로 인한 과열 경쟁, 사교육 조장, 교육과정 정상 운영 저해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학교별 성적표가 나오면 평준화 정책의 부작용이 노출되고, 이에 따라 좋은 학교로 학생들이 몰리지 않겠느냐는 걱정인 것 같다.

하지만 현재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가 '공교육의 실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교육부의 이 같은 태도는 이해하기 힘들다. 학교별 격차 등이 어떤지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뒤떨어진 학교를 끌어올리는 게 진정한 평준화 대책이고 공교육 정상화 방안이다. 또 교사의 자질 등을 나름대로 분석하지 않고서는 교육의 효율성을 높일 방법이 없다.

교육의 목적이 경쟁보다는 인성 도야에 있어야 하는 것인지, 고교 평준화가 바람직한 것인지 등에 대해선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학업 성과를 높이는 것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또 노무현 대통령 말대로 교육은 사회 양극화 문제, 사회적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핵심적 정책 수단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도 학교 교육의 실상이 어떤지를 분석하는 연구가 많아져야 한다. 이런 연구에 필수적인 전제가 수능시험 결과 등을 포함한 각종 교육 관련 정보의 공개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학교의 서열화'라는 단기적 부작용을 걱정해 이들 자료를 움켜쥔 채 내놓지 않고 있다. 교육부의 이런 태도는 기본 교육 관련 자료의 분석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모호한 철학이나 감(感)에 의존해 교육정책을 펴나가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뉴라이트 계열 단체나 한나라당의 주장이라고 해서 반감을 앞세울 일이 아니다.

이세정 정책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