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변화 어려운 동맹-경쟁관계|미-일 정상 1차 회담 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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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워싱턴=장두성 특파원】「나까소네」(중조근강홍) 일본수장은 18일「레이건」미국대통령과의 1차 회담 중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노아웃에 만루가 된 야구경기에서 방금 교체되어 들어온 투수와 같다고 비유했다. 이에 대해「레이건」대통령은 자기도 비슷한 입장이라고 대답했다. 이와 같은 양국지도자 사이의 가벼운 담소는 지난 몇 년 동안 계속 악화되어온 미-일 관계를 호전시키기 위해 마련된 이번 정상회담에 작용하고 있는 역 방향의 두 가지 압력을 잘 예시해주고 있다. 미국과 일본관계는 두 나라를 서로 밀착하드록 유도하는 세계전략상의 동맹관계와 두 나라를 서로 적대관계로 밀어내는 경제대국으로서의 경쟁관계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측면을 갖고 있다. 이 두 측면을 조화시키기 위한 첫 회담결과를 미국 측 고위관리는『건설적이고 솔직한 것이었다』고 규정지었다. 이 외교적 수사를 상용어로 풀이하면『「나까소네」가 미국 오기 전에 취한 일련의 조치가 고무적이기는 하지만 아직 서로간의 입장에는 큰 거리가 있다』는 것이 된다.
현재 미국과 일본 사이에 개재돼있는 문제는 크게 양국간의 무역불균형문제와 일본의 군비 증강의 두 가지가 있다.
이중 미국 측이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고있는 것이 연간 2백억 달러(82년도 추계)에 달하는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다.
미국 측이 일본에 요구하는 통상관계조치는 원칙적으로 미국이 일본에 대해 시장을 개방하고 있는 정도로 일본시장에 미국상품을 개방하라는 것이다.「나까소네」수장은 미국으로 떠나기에 앞서 70개 품목에 대한 수입관세를 인하하고 세관검사기준과 같은 비관세장벽을 완화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그와 같은 형식장의 장벽해소만으로는 미국상품이 뚫을 수 없는 「문화적 장벽」이 있다고 미국업자들은 불평하고 있다.
이에 대해「나까소네」수상은 미국 TV와의 회견에서 미국상품의 일본진출이 여의치 않은 것은 미국기업들이 일본기업들만큼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자주 듣던 변명을 했다. 그는 일본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든 코카콜라 자동판매기를 예로 들면서『노력한 미국기업은 성공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미국에 도착한 후「레이건」대통령과의 면담 중「실질적 시장개방」이 과거처럼 문화적 장벽에 부딪혀 유야 무야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를 감독하는 부처를 신설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적극성을 보였다.
현재 미국 측에서 특히 강조하고 있는 분야는 자동차수입을 1백48만대로 제한한 과거 2년 동안의 일본측 자율규제를 앞으로 2년 더 연장하고 심지어 그 수를 더 줄이자는 것과, 쇠고기나 귤 등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일본의 수입쿼터를 철폐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농민들의 반발로 이런 요구는 일본측이 들어줄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비문제에서「나까소네」수상은 미국에 오기 전에 방위비를 6·3% 증강시키고 군수물자 수출을 금지하는 결정을 무릅쓰고 미국에 전자광학섬유·레이저광산 등 고도의 방위기술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측은 일본정부가 국내여론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조치를 취한데 대해 한편으로 환영하면서도 방위비 6·3% 증강에 대해선 크게 불만을 표하고 있다. 서 태평양해역의 방위를 일본이 대행해줄 것을 바라는 미 국방당국자들은 그 정도의 군비증강으로는 미국이 원하는 정도의 임무를 일본이 떠맡을 수 없다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대개의 정상회담이 그렇듯「나까소네」의 미국방문이 극적으로 미일관계를 호전시킬 수는 없을 것 같다.「나까소네」가「피처」에 비유한 농담도 사실 자기가 방미에 앞서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취한 친미적 결정들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점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 축은 그 정도의 양보가 환영할만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 만으론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해왔다. 1차 정상회담 결과를 실명하는 미 정부 고위관리의 용어 속에도 이점은 분명히 지적돼 있다. 동맹관계와 경쟁관계의 조화는 적어도 첫 회담에서는 이뤄지지 못했다는 증거다.
최근 미 하원통상위원회 의장인「존·딩겔」의원은 최근의 일본 교역정책을 진주만 공격에 비하면서『일본인들은 우리산업을 파괴하고 우리 일자리와 달러를 빼앗아가고 우리를 일본식민지로 전락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그런 반응은 신경질적으로 과장된 것이기는 하지만 장기화하는 불황 속에 허덕이면서 속죄양을 찾고있는 미국실업계의 좌절감을 상당히 반영하는 것이다.
「나까소네」수상도 첫 회담 중 이와는 다른 뜻에서 그와 비슷한 비유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 보호주의 경향이야말로 30년대의 세계공황과 2차 세계대전의 한 원인이었으므로 미일 두 나라는 사태가 그렇게 악화하는 것을 방지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상호간의 위기감이 두 나라의 불화를 씻는 유인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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