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억 들인 국가안전관리시스템 점검해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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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 낮 12시50분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내 소방방재청 종합상황실. 특급 지진해일 예보가 발령됐다. 상황실 요원이 234개 지방자치단체와 전용선으로 연결된 국가안전관리시스템(NDMS) 메인컴퓨터 앞에 앉았다. 요원은 지진해일 예보 매뉴얼을 뒤졌지만 이렇다 할 표준문안을 찾아내지 못해 허둥댔다. 요원이 컴퓨터에 재난 예보 입력을 마친 시간은 오후 1시5분. 재난 예보를 지자체에 알리는 데 15분이 걸린 것이다.

이틀 뒤 일요일인 4월 10일 오후 8시33분 같은 장소. 특급 지진해일 예보가 NDMS를 통해 지자체에 전달됐다. 20분 뒤 예보를 제대로 접수한 지자체는 234개 시.군.구 중 14%인 34곳에 불과했다. 종합상황실을 상시 운용하는 지자체가 많지 않았고, 휴일이다 보니 당직자가 종합상황실이 아닌 당직실에서 근무해 예보를 파악하지 못했다.

감사원이 소방방재청을 불시에 들이닥쳐 긴급재난 예보 시스템을 점검한 결과다. 실제 상황이라면 긴급재난 예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고스란히 엄청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감사원은 소방방재청과 기상청.부산시 등 남해안 5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재난대비 시스템을 감사한 결과 총체적인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5일 밝혔다.

NDMS는 소방방재청과 기상청, 전국 234개 시.군.구 종합상황실 간에 실시간으로 재해 예보와 피해 상황, 테러 관련 정보 등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만든 시스템이다. 정부는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521억원을 들여 소방방재청과 지자체에 종합상황실을 만들고 컴퓨터망을 연결했다.

그러나 막상 재난 예보 상황이 터지자 NDMS는 작동하지 않았다. 3월 20일 오전 10시53분 일본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기상청은 22분이 지난 오전 11시15분에야 1차 지진해일 주의보를 내보냈다. 그나마 NDMS를 이용하지 않고 팩스로 통보했다. 가장 긴급한 상황인 지진해일에는 NDMS를 이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어 통상적인 방식을 사용했다는 것이 감사원의 지적이다. 또 피해가 예상됐던 78개 지자체 중 18개 지자체는 아예 통보도 받지 못했다. 팩스 통보 대상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지진해일 관련 특보 발령 기준도 모호한 실정이다. 기상청 규정에 따르면 호우.대설 주의보 등은 일정한 기준이 있지만, 지진해일 주의보의 기준은 '대규모 해저지진에 의한 해일 발생이 우려될 때'라고만 돼 있어 즉각 대처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지자체 상황실 운영도 엉망인 것으로 드러났다. NDMS 전담 상황실을 갖춘 곳은 15개 지자체뿐이었다. 또 NDMS의 경보 내용이 모니터에 문자로만 나타나기 때문에 당직실과 상황실이 떨어져 있는 경우 이를 제때 파악하기 힘든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 국가전략사업평가단 김충환 과장은 "우리나라에 지진해일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대응체계에 문제점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NDMS도 지난해 도입돼 아직 체계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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