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고민 드러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바지저고리가 되기 싫다』
육상연맹을 파국으로 몰고간 회장과 대의원들의 대립이유가 이것이다.
장익룡회장은 『수억원을 들여 연맹을 운영하는 회장이 임원신임을 못한다면 무엇때문에 회장을 하겠느냐』는 현실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대의원들은 『임원선임권한은 원래 대의원총회에 있으며 언제나 의장에게 일임할 바에야 거수기노릇하는 총회는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원칙론을 내세운다.
대의원들의 「친위 쿠데타」는 14일의 총회를 수일 앞두고 계획되었다. 「현집행부의 다수 임원들이 능력이 부족하고 육상발전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평소의 의견이 뭉쳐졌고 『장회장이 과감한 임원 기용의 뜻이 없으므로 대의원총회에서 수술을 단행해야겠다』는 계획이 세워진 것이다.
결국 대의원들의 목적은 서윤복부회장을 비롯한 일부 이사들을 퇴진시키고 진수학·이창엽·최충직·엄팔용·안영주·정기선씨등 육상계의 실력자들을 가담시켜 집행부를 대폭 강화,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을 향해 중무장을 갖추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장의장은 대의원들이 미리 결속하여 임원 명단을 작성. 뒤늦게 회장더러 수정없이 수락하라는 것은 회장을 무시하는 처사로서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다.
결국 육상인들은 최근의 경기단체관행(집행부구성을 회장에 일임하는 것)을 깨뜨려 육상연맹을 명실상부하게 육상인 자신들의 단체로 운영하자는 뜻이지만 기업인인 장회장은 이들 육상인들에 대한 불신감을 씻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장회장은 대의원총회의 의결에 따를 경우 자신은「허약한 의장」으로 전락될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 같다.
육상인들은『장의장을 잘 보필하여 연맹을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으나 장의장은 그들중 일부를 「감투를 노리는 무리」로 보는 것이다.
기업인이 회장이 되고 경기인은 그 수족이 되는 한국의 경기단체 체질이 지닌 구조적인 고민을 육상연맹이 대변하는 셈이다.
장회장은 당초 유임의 뜻이 있었으나 대의원들의 심상치않은 움직임을 미리 간파하고도 의견을 절충하려는 노력을 회피, 『차제에 골치아픈 경기단체 회장직을 그만두자』는 인상도 풍겼다. <박군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