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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시스」의 호화요트초대서 결별가져온 불행은 시작|「칼라스」전남편「메네기니」씨밝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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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0세기중반을 휘잡아온 오페라의 여왕이며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오나시스」의 연인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마리아·칼라스」-.
비밀에 싸여있던「칼라스」의 사생활이 남편이었던「조반니·바티스타·메네기니」의 자서전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밝혀져 대단한 화제가 되고 있다.
친구이자 남편으로 12년간 「칼라스」를 돌봐주며 세기의 대스타로 키워냈던 「메네기니」는 원앙과도 같았던 그들 부부사이를 「오나시스」가 어떻게 뚫고 들어와 끝내는「칼라스」를 훔쳐 가버렸는가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칼라스」와「오나시스」가 처음 만난것은 57년 9월 베니스에서 있었던 한 무도회에서 였다. 「오나시스」가 「칼라스」에게 사로잡히게된 결정적인 계기는 58년12월19일 파리에서 열렸던 한 축제음악회에서다.
두 번째 만남이 된 이 음악회는 전후 가장 성공적인 음악회로 대단한 호평을 받기도 했는데 여기서「오나시스」는「칼라스」에게 충격적인 감흥을 받아『저 여인만 얻을 수 있다면 모든 이를 감동시킬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이때부터「오나시스」의 끈질긴 공작이 벌어지게 된다.
그가 「칼라스」에게 내민 미끼는 크리스티나호에의 초대.
파리음악회가 끝난 후 미국공연을 거쳐 59년 늦은 봄 이탈리아로 돌아온 「칼라스」는 베니스의 한 무도회에 초대돼 그곳에서「오나시스」로부터 크리스티나호의 순양함에 초대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했다.
이때부터 시작한「오나시스」의 접근은 부인인 「티나」까지 동원, 드디어 7월23일 「메네기니」와「칼라스」를 크리스티나호에 승선하게끔 하기에 이른다.
당시「칼라스」는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아했으나 3주간 바닷공기를 쐬는 것이 좋다는 주치의의 권고와 「메네기니」의 설득으로 크리스티나호의 탑승을 승낙했다고 자서전은 전하고 있다. 크리스티나호가 몬트아토스에 정박한 8월6일은 「칼라스」와「메네기니」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았다.
28년이란 큰 나이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이후 단 한번도 따로 떨어져 자본적이 없을정도로 금실이 좋았던 이들 부부에게 이변이 일어났다. 즉, 함께 잠자리에 들자는「메네기니」에게 「칼라스」는『난 여기 있을테니 마음대로 하라』고 말한 것.
이후 저녁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오나시스」와 춤을 즐기던「칼라스」는 드디어 8월10일 「오나시스」와 함께 밤을 지샌다.
연단 외박을 추궁하는 「메네기니」에게 「칼라스」는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8월13일 하오5시. 크리스티나호를 떠나 밀라노에 돌아 왔다. 그러나 크리스티나호를 떠나면 모든 것이 원상으로 돌아갈 것이라 믿었던 「메네기니」의 희망과는 달리 「칼라스」의 마음은 「오나시스」에 더욱 심하게 기울어져만 갔다.
8월15일, 드디어 「칼라스」는 「메네기니」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자신은「오나시스」와 함께 지내기로 결정했음을 알린다. 「칼라스」와「메네기니」,「오나시스」세 사람은 다음날새벽 3시까지 논쟁을 벌였으나 아무런 합의도 찾지 못한채 17일 저녁 다시 얘기를 계속한다.
드디어 「칼라스」는 17일밤 짐을 챙겨들고 「메네기니」의 집을 떠남으로써 「오나시스」와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칼라스」의 스캔들이 신문에 알려진 것은 모든 것이 종결지어진 다음인 59년 9월7일이었다.
【선데이 타임즈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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