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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방주가 만난 사람] “초소형 의료로봇 기술, 선진국 넘보지 못하게 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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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호 06면

‘광주↔김포 1000회’. 얼마 전 만난 전남대 박종오(59· 기계공학과 교수) 로봇연구소장이 내민 비행기표에 적힌 탑승 횟수다. 2005년부터 며칠 전까지 약 10년간이다. 국내만 그런 게 아니다. 해외 비행 마일리지는 170만 마일이 넘었다.

박종오 전남대 로봇연구소 소장

 요즘 비행기를 많이 탄 기록이 무슨 대수일까. 하지만 탑승 기록은 그의 바쁜 삶을 방증한다. 얼마 전에는 독일 출장을 갔다가 여섯 시간을 머무른 뒤 다시 귀국하기도 했다.

 박 소장은 세계적으로 아주 작은 로봇을 뜻하는 마이크로 로봇을 개척한 로봇공학자다. 그가 이끄는 전남대 로봇연구소의 마이크로 로봇 실력은 세계에서 3등 아니면 4등쯤 된다. 대학로봇연구소로는 국내에서 최대 규모다. 전임 연구원과 석·박사 대학원생을 합하면 60명 정도다. 외형만 큰 것이 아니다. 혈관 속을 다니며 치료할 수 있는 ‘혈관 치료용 로봇’ 세계 첫 개발, 박테리아로 암 치료 가능성을 연 ‘박테리오봇’ 역시 세계 첫 작품이다. 그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전남대로 옮기기 전에는 세계 두 번째로 캡슐내시경을 개발해 상용화했다. 대장내시경 로봇도 세계 첫선을 보였다. 캡슐내시경은 현재 70여 개국에 수출되고, 대장내시경 로봇은 이탈리아에 기술이전을 했다.

 국내외 대부분의 로봇연구소가 걸어다니는 사람 형상의 로봇, 산업용 로봇 등 덩치 큰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지름 1㎜, 길이 10㎜ 정도의 혈관치료용 로봇이나 ‘캡슐내시경’처럼 아주 작은 로봇으로 방향을 틀어 성가를 높였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간 것이 주효한 것이다.

1 지름1㎜의 혈관치료용 로봇. 2 재활용 케이블 로봇. [사진 전남대]

KIST 퇴직금으로 연구실 운영
그의 연구실은 해외 출장이나 명절 하루이틀 정도를 빼고는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다. 같은 연구팀인 박석호·고성영(기계공학과 교수) 두 교수의 연구실도 마찬가지다.

 박 소장이 밤 10시 넘어 두 교수를 회의 소집한 것을 본 필자가 일에 파묻혀 사는 게 불행해 보인다고 말을 건넨 적이 있다. 그는 “이런 일이 일상화돼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연구하지 않고 쉬고 있으면 되레 불안하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일 중독자의 대답이었다.

 그가 전남대로 자리를 옮긴 데에는 사연이 있다. 당시 그가 이끌던 프런티어사업단의 내부 직원이 검찰에 그가 연구비를 횡령했다며 허위 투서를 했다. 이 사건은 무혐의로 결론났고, 그는 곤욕을 치른 뒤 전남대로 짐을 쌌다. 당시 박 소장의 집을 압수수색한 한 수사관은 궁색한 티가 덕지덕지 묻어나는 그의 집 세간살이를 보고 혀를 찼다는 후문이다. 연간 100억원의 연구비를 집행하고 있었고, 연구비를 횡령했다는 단장의 집 살림살이와는 영 딴판이었다. 쇼파의 레자는 낡아 빛이 바랬고, 그 흔한 골프채 하나 없었던 것이다.

 당시 전남대로 옮기는 그를 로봇공학계에서는 “이제 박종오 박사는 곧 죽어(‘죽는다’는 의미는 연구비도 못 따 과학자로 생명을 잃는다는 뜻)”라고 입을 모았다. 사실 잘나가던 과학자도 지방으로 간 뒤에는 맥을 못 추는 경우가 다반사다. 중요한 인적자원인 대학원생을 구하기 어렵고, 이렇게 되면 연구비 따기는 더욱 어렵게 된다. 빈곤의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이다.

 박 소장은 자신의 KIST 퇴직금을 전남대로 옮겨 초창기 대학원생 장학금과 연구실 운영비로 거의 다 썼다. 지금은 서울뿐 아니라 연변과기대에서도 그에게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전남대 대학원에 들어온다. 영국 박사도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하려고 박 소장을 찾았다.

 그는 요즘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연구비를 확보해 운영하고 있다. 중앙정부와 광주광역시가 함께 340억원을 들여 광주광역시 첨단국가산업단지에 ‘마이크로 의료로봇센터’를 짓고 있기도 하다. 이 센터가 2016년 9월 완공되면 박 소장은 더욱 날개를 달게 된다.

 박 소장이 ‘죽지 않고’ 잘 나가자 세간에는 그의 정치력이 대단할 거라고 수군댔다. 그러나 정작 그는 ‘로비’와는 거리가 멀다. 요즘에는 종종 경조사를 찾기도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이웃을 챙기는 것조차 무심했다. 식사를 대접하는 일도 극히 드물었다. 정치력 운운하면 그는 그냥 웃는다.

상용화·기술이전 목표로 연구
과학계에는 연구를 위한 연구도 꽤 있다. 그러나 박 소장은 상용화나 기술이전을 목표로 한다. ‘이형부품 자동삽입로봇’(삼성전자에 이전), ‘금형 자동연마로봇’(화천기공에 이전), ‘수도꼭지 자동연마로봇’(유진 워터웍스에 이전), ‘지능형 차체용접로봇’(대우자동차에 이전), ‘지능형 차체가공로봇’(현대자동차 및 대우자동차에 이전), ‘대장내시경로봇’(이탈리아에 이전), ‘캡슐형 내시경’(인트로메딕에 이전) 등 굵직한 기술을 상용화하거나 기술이전을 했다. 지금도 그는 캡슐형 내시경을 몸 밖에서 자동으로 조종하는 시스템, 혈관치료용 로봇 상용화 기술, 뇌수술용 로봇 등 다양한 로봇을 개발 중이다.

 그의 고등학교 모교는 광주제일고(이하 광주일고)다. 1995년 제1회 ‘자랑스러운 일고인상’을 그가 받았다. 사실 광주일고 출신으로는 내로라하는 공직자·법조인·사업가·예술인·의료인이 대단히 많다. 그는 그래서 여러 종류의 상을 받은 것 중에서도 이 상 수상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박 소장은 우리나라를 마이크로 의료로봇의 메카로 만들고 싶어 한다. 몸에 수술 자국을 최소화하는 이 로봇이 미래의 중요한 먹거리라고 그는 예상했다.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라고 부풀려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캡슐형 내시경만 해도 이스라엘에서 처음 개발해 상용화했고, 뒤이어 박 소장이 상용화할 때만 해도 그렇게 시장이 커질지 몰랐다.

 그가 도전하고 있는 캡슐형 내시경을 조종하는 시스템을 상용화하면 내시경 분야의 패러다임이 크게 바뀔 수도 있다. 군사용 로봇이나 우주로봇 등 대부분의 로봇 기술을 선진국이 패권을 장악하고 있지만 마이크로 의료로봇만큼은 우리나라가 선점하고 싶은 것이 그의 희망이다.



박방주 교수=중앙일보에서 20여 년간 과학전문기자로 활동했으며, 2009∼2012년 한국과학기자협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가천대 전자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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