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자율화 지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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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교복자율화」라는 원칙은 흔히 생각되는 것보다는 훨씬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교복자율화는 현실적으로 중·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우리사회에「교복」이 형성해온 문화적 관행이 사라지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교복」은 흔히 군대식복장을 연상하게 하고 다분히 학생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요소가 되었다.
그것은 또 일제식민 통치시대의 비민주적이고 획일적인 억압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그런 의미에선 교복을 폐지하고 학생들의 의복을 자율화한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발전이다.
어느 면에선 광복이후 근40년 동안 이루어진 서구화, 민주주의교육이 그간엔 명목뿐이었다 가 이제 교복자율화로 해서 비로소 실질 화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중·고둥학교에 다니는 10대의 청소년들이 엄격한 획일과 통제의 룰에서 벗어나「개인」을 회복하고 자율과 자신을 내세우며 인격적 독립을 인정받게 되는 시대적 전환의 의미마저도 있다.
그러나 막상 교복자율화가 새 학기부터 실시되는 시점에 이르러 돌아보면「교복」의 의미는 일률적으로 부정되고 말 것이 아니고「자율」이 결코 문제없이 수용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이 인식되고 있다.
「교복」에는 비록 규제와 어색함은 있으나 학생의「학생다움」을 강조하는 장점도 있다. 그것은 검소와 규율을 요구하며 학생이면 누구나 사회적 계층의 차별 없는 동일성과 동등성을 확보해 준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아직 배움의 길에 있는 학생이 외형적으로 자신의 입장과 본분을 확인하는 장치도 됐다. 학생들은 교복을 입음으로써 자신이 학생임을 자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로부터 학생으로 대우를 받고 보호받을 수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교복자율화 시대를 맞아 그들은 자신과 사회 양면에서 자신의 본분 혹은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기 어렵게된 묘한 입장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교복자율화로 자유와 자율은 확보할 수 있지만 반대로 학생자신이 자기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더 철저하게 되어야 되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발자유화와 교복자율화의 시범실시 몇 달 동안에 나타난 문제들에선 적지 않은 부작용도 있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사회적 주의를 환기할 필요도 느낀다.
제기된 문제 중 두드러진 것에는 복장의 사치경향과 탈선위험이 있다.
학생들의 옷차림은 각양각색이지만 학생의 신분으로 지나치게 비싼 사치의복과 지저분한 차림의 공존으로 불협화를 이루는가 하면, 학생과 비 학생을 구분하기 어려워 교외에서의 교사들의 지도가 어려워졌다. 그만큼 학생들의 탈선은 용이해졌다는 뜻이다.
그런 문제들의 심각성을 깨달은 교육당국은 지금「교복자율화」실시의 세부지침을 각 학교에 시달함으로써 이에 대처하고 있다.
그 지침은 2만원 이상의 고급의류나 외제 옷, 과다노출 복 등 학생신분에 위배됨직한 의복의 착용금지와 사치성 장신구, 신발, 화장을 규제하는 내용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교육당국의 그 같은 지침은 커다란 변화로 볼 수 있는「교복자율화」실시의 문화충격에 대비한 방안으로선 결코 충분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당연한 조치다.
다만 2만원이란 가격규정이 과연 우리 사회 경제적 실정에서 얼마나 타당한 것인가 도 문제이나 학생다운 검약을 조장하겠다는 의도만은 좋아 보인다.
그러나 학생들의 교복자율화는 이 같은 규제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의 자발성과 양식을 고양하는 노력과 사회적 대응의 노력이 병행해야 더 효과적일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자율이란 것이 교복자율화가 원초적으로 달성하고자 한 큰 목적이라고 하면 역시 규제적 방식보다는 교육과 의식의 형성으로 대처하는 것이 더 근본적일 것이다.
뿐더러 우리사회가 값싸고 실용적이며 개성이 담긴 청소년 복을 개발해내지 못하고 단지 그들을 부화경박한 사치경쟁으로 내몰아 거기서 이득만 취하려해서는 안되겠다.
그것은 꼭 의류, 장신구, 신발업자에 국한된 문제만이 아니며 자유복장을 입은 학생들의 탈선과 낭비를 조장하는 각종 업체의 문제도 된다.
교복자율화의 실시에 대비하여 교육자, 학부모, 그리고 사회각계의 관심과 주의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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