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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정상 서울교환|한미정상회담 선례 따라 "불편"한 건 말끔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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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나까소네」일본수상의 전격적인 방한은 의표를 찌른 발표와 베일에 가려진 배경 등 만2년 전의 한미 정상회담 때와 여러 면에서 흡사하다. 한 때 불편했던 한미관계가 양국정상의 극적인 회동으로 일신됐듯이 이번 한일정상의 서울교환 역시 새로운 한일 관계정립에 획기적인 계기가 되리라는 게 외교 가의 일치된 평가다. 그러나 이 같은 결실에 이르기까지의 교섭 경위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연초 중대발표 설 돌아>
○… 『외무부를 주시해 보시오』 -.
지난 연말 밑도 끝도 없이 나돈 연초 중대발표 설에 대해 김상협 국무총리가 한 이 말이「나까소네」수상의 방한을 암시하는 최초의 힌트였다.
그만큼 두 나라간의 교섭은 극비리에 진행됐고 외무부에서도 극소수의 관계자만이 알고있었던 사항.
또 경협 문제는 지금껏 외무부의 공식경로 만을 통해 교섭해온 것과는 달리 이번 방한까지의 교섭과정에는 다른 채널도 동원됐기 때문에 보안은 더욱 철저히 유지됐던 셈이다.
양국 공식외교 경로를 통해 고위실무자간에 첫 공식교섭이 재개된 것은 지난12월초로 알려져 있다. 양국 정부는 정상회담의 실현여부가 걸려있는 이 교섭이 공개되는 경우 혹시 여론의 바람이 엉뚱하게 불어올까 염려해 공식경로간의 교섭까지도 지하로 잠입시켰다. 동원된 외교채널이 양국주재 대사관.
한두 명의 외무부 고위관계자만이 관계한 가운데 양국정부의 입장은 주재대사관을 통해 본국 정부에 전달되는 양상이었다. 양국외무부간의 절충은 약 보름간에 걸쳐 진행됐다.
이 기간 중 「나까소네」수상은 별도의 채널을 마련, 경협의 정치적 타결-자신의 조기방한-새로운 한일협력관계정립의 청사진을 한국 측에 제시하기도 했다는 얘기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주요인물이 바로 일본 재계의 거물인 「세지마」씨 (뇌도룡삼 이등충전회장) 로 12월27일께 방한해 이범석 외무장관을 공관으로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보다 앞서 이 장관은 12월초 주말을 이용해 남해 쪽의 조그마한 항구도시에서 일본의 고위관리와도 접촉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나까소네는 따로 교섭>
○…한일양국간에 무언지 중대한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는 기미가 비친 것은 지난해 12월30일 「마에다」 (전전리일) 주한일본대사가 이범석 외무장관을 방문한 때부터.
이날의 요담에 관한 공식 브리핑에서 외무부 측은 경협의 조기타결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연막발표를 했는데, 사실은 경협은 벌써 합의점에 도달했고 이날 요담에서는 「나까소네」수상의 방한문제가 논의됐다는 후문.
이후 「마에다」대사는 지난4일 또 다시 외무부를 방문, 「나까소네」수상에 대한 우리 정부의 초청장을 전달받았으며 7일에는 정무협의를 위해 동경으로 귀국하기 앞서 다시 이범석 장관을 방문, 「나까소네」수상 방한에 따른 제반문제를 협의.
한편「기우찌·아끼따네」 (목내소윤) 일 외무성 아시아 국장은 지난5일 내한, 김병련 아주국장 등 외무부실무자들과 양국공동성명, 방한일정, 정상회담의제 등에 관해 구체적인 협의를 거친 후 이튿날 귀국.
한편 외무부의 모든 관심이「나까소네」 수상의 방한에 쓸리자 10일 방한키로 이미 발표된 「벨기에」 외상 측으로부터는 그의 방한에 김을 빼는 것이라고 애교 섞인 클레임을 걸어오기도 했다고.
○…작년 말 한일의원연맹총회관계로 동경에서 「나까소네」수상을 접촉했던 의원들은 당시의 인상을 토대로 『그의 방한이 예상보다 빠르기는 하지만 사필귀정』이라고 분석.
박경석 의원 (민정) 은 작년7월 이상익 간사장과 당시 행정관리 청 장관이었던 「나까소네」 수상을 만났을 때 그가 대뜸 『경협 문제는 관료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정치인이 나서야한다』 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박의원은 12월 「기우찌」 (목내소윤) 일 외무성 아주 국장을 만났더니 영국이 포클랜드 전쟁 때 가장 어려운 지점을 골라 3면에서 상륙 작전을 폈다면서 한일 경협 교섭 채널의 다원화 필요성을 넌지시 비치더라고 했다.

<세종로 일장기 안달아>
○…전격적인 「나까소네」 수상의 방한결정으로 외무부 의전실과 동북아과는 초비상.
준비기간이 워낙 짧아 의전실 직원들은 정초연휴 3일마저도 꼬박 밤샘을 할 정도로 분망 했다.
「나까소네」수상은 정부수반이긴 하지만 국가원수가 아니라 국내의전규범 상 국빈방문 (State Visit) 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수상이 서방7개국 정상회담의 멤버라는 점등이 예우에 고려되고 있다.
입국시의 환영 식을 공항에서 하고 청와대에서 만찬을 베풀며 수교훈장 광화대장의 수여가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국빈방문과는 달리 중앙청∼세종로4거리 중앙분리대에는 일장기가 게양되지 않는다.
실무적으로 회담준비를 하는 아주국 실무자들의 가장 고심거리는 공동성명작성문제.
지난 5, 6일「기우찌」일본 아주 국장의 내한으로 시작된 공동성명작성작업은 현재 양측이 성명초안을 교환하고 초보적인 의견교환을 한 단계다.
밖으로 나타난 장미 빛 분위기와는 다른 밀고 당기는 지구전이 최후순간까지 계속되리라는 게 관계자들의 공동성명작성교섭에 대한 전망이다.
공동성명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한반도 안보정세에 관한 일본의 인식을 어느 정도 강도 있게 표현하느냐 하는 점. 「나까소네」 수상의 비교적 우경적 정치성향에도 불구하고 일본 외무성실무진들은 이 문제에 관한 종전의 완고한 자세를 쉽게 누그러뜨릴 기색이 아니다.
우리측 역시 공동성명이 곧 앞으로의 동북아안보를 위한 일본측 자세의 규범이 된다는 점에서 피차 빡빡한 겨룸의 자세로 일관할 공산이다. 만성적 무역역조와 제일동포지위향상 등 해묵은 한일현안에 대한 취급도 관심거리. 정부는 이번 기회에 한일현안의 발전적 해결를 위한 구체적인 표현을 해야겠다는 각오다.
반면 일본측은 양국국민간의 이해심화를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대중문화교류의 확대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정계선 "진의 알아야">
○…여야 할 것 없이 정계에서도 「나까소네」 수상방한을 환영하고 한일우호강화를 다행스럽게 여기는 분위기지만 『그럴수록 정신을 단단히 차려야한다』 는 견해도 없지 않다.
P의원 같은 이는『우리가 이 만큼 커졌으니「나까소네」도 오는 것 아닌가』 하는 류의 생각은 잘못이라면서 이제부터라도 우리 자신을 객관화시켜 산업·기술·문화·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와 일본과의 거리가 얼마 만큼이고 우리의 약점과 일본의 강점은 무엇이며 일본의 진의가 무엇인지 등을 검토해 있을 수 있는 상황에 대응할 준비를 갖춰야한다고 역설했다.
또 일본에 대한 미국의 안보 분담요구, 일본의 서 태평양 해로 방위를 위한 해군력 증강 등의 최근 움직임을 볼 때 『독립기념관을 건립하면서 한편으로는 한·미·일 3국 해군의 공동연습이 벌어지는 상황도 예상해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극일의지와 민족주체의 상징인 독립기념관의 건립과 한일우호협력강화라는 표면상 지극히 상위되는 듯한 두 명제를 우리 내부에서 조화시켜 나가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일협력이 커질수록, 그 필요성이 절실할수록 동시에 독립기념관 건립이 상징하는 우리의의지도 강화돼야 한다는 논리다. <유균· 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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