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공동성명과 협력조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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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나까소네」(중조근강홍) 일본수상의 방한을 목전에 두고 두 나라 실무진들이 공동성명 문안을 놓고 집중적으로 벌이고 있는 협의에 우리는 비상한 관심을 쏟지 않을 수가 없다.
일본수상이 회담만을 위해서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나까소네」의 방한은 중요하고, 한일관계는 단순히 경협 같은 현안을 해결하고 우호관계를 회복하는 것만이 두 나라 최고지도자들 앞에 놓인 과제가 아니다.
한일관계는 동북아시아의 안보정세,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대한 갈망이라는 현실 앞에서 변증법적인 도약을 하려는 시점d[ 와있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두 나라가 모두 역사적인 시각과 지역적인 안목을 잃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의 안보인식 하나를 예로 들면 일본은 75년「포드-미끼」공동성명 이래 한국안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점차 후퇴시켜왔다.
69년「닉슨-사또」성명에서 한국안보가 일본안보에 필수적(essential)이라고 인식되었던 것이「포드-미끼」성명에서는 한국안보를 포함한 한반도안보가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에 필요(necessary)하다로 격하되었다.
77년「카터-후꾸다」성명의 한국조항은 일본과 동북아시아의 안전의 유지를 위해서 한반도 평화유지와 안정의 계속적인 중요성(importance)에 유의하는 데 그쳤다.
이번「전-나까소네」성명은 한국안보와 일본안보를 하나로 간주했던「닉슨-사또」형의 조항을 넘어서서 그러하기 때문에 두 나라가 안보상의 공동노력을 할 필요성을 함께 인정하는 데까지 진일보할 것을 우리는 기대한다.
두 나라의 안보협력은 좁은 의미의 군사협력을 뜻하는 게 아니라 한-미-일 안보협력체제의 테두리 안에서 공동의 가치관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조항이 일본 국내에서 거부반응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한국에는 북한의 위협이 없다(78년「기무라」외상), 한국은 우리와 한편이고, 북한은 우리의 적이라는 생각은 정세에 맞지 않는다(79년「후루이」법상), 한국방위는 독립국가인 한국자신이 담당할 문제다(81년「소노다」외상)같은 발언에 나타난 일본중심의 한국안보관이 이번 공동성명에서 완전히 극복되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한일관계가 바탕이 튼튼한 새 시대를 맞기 위해서는 두 나라간에 자주 논란의 대상이 되는 무역불균형 문제와 재일 한국인들의 지위향상 문제가 다루어져야 한다. 이런 문제에 관한 상호협력의 자세가 갖추어지지 않고는 문화교류의 확대 같은 것이 제대로 섬과를 거둘 수가 없을 것이다. 기술협력도 우리가 다른 어떤 문제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야다.
62년 이후 80년까지 한국이 일본에서 도입한 기술은 l천14건으로 전체 도입건수 1천7백26건의 58·7%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제공한 기술은 대부분 낙후된 중소기업형이거나 핵심기술을 빼놓은 부차적(secondary)인 것에 그치고 있다.
그 위에 수출제한, 비싼 로열티지급 등 불평등 조건까지 얹어놓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 스스로가「부메랑 효과」를 과대하게 떠들고는 기술협력에 인색하게끔 장치를 마련해 놓고있다.
말로는 수평분업을, 속으로는 기술보호를 고집하고 있는 한 한일간의 기술협력은 구두 선에 불과할 뿐이다.
한일 우호관계가 작은 파란에도 쉽게 흔들리는 것은 두 나라 국민들간에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한 북한의 위협을 인정하면서도 그런 위협이 일본의 대한협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라는 일본지식층의 사고방식 같은 것도 이를테면 신뢰구축에 큰 장애요소가 되는 것이다.
일본이 안보문제에서 우리의 인식에 접근하고 경제협력과 기술이전에서 우리에게 덜 인색하면 그것이 바로 신뢰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이번 공동성명에는 이런 점이 충분히 반영되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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