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캠퍼스에 보도블록 깔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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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최루탄.화염병과 함께 학생 시위의 상징물이었던 보도블록이 서울대 관악캠퍼스에 다시 깔린다.

1980년대 민주화 시위 때 슬그머니 사라진 지 20여 년 만이다. 당시 학생들은 폭압적인 경찰의 시위 진압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보도블록 등을 깨뜨려 '투석전'을 벌이곤 했었다. 이에 정부와 학교 측은 교내에 있던 보도블록을 모두 없애버렸다. 대신 시멘트와 콘크리트가 대학 내 도로를 덮었다. 서울대 83학번 김모(42)씨는 "80년대 초반에는 시위 때 보도블록을 깨뜨리는 담당자를 정하기도 했다"며 "어느 날부터 깨뜨리기 어려운 시멘트로 바뀌었다"고 회고했다.

서울대는 지난달부터 학교 정문 인근에 자리한 경영대에서 중앙도서관까지 1.2㎞ 구간에 흙으로 구운 친환경 블록을 까는 공사에 들어갔다. 학교 관계자는 "학생들이 더 이상 과격한 시위를 벌이지 않는다는 믿음이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학생 운동 등으로 인해 보도블록 공사가 금기였다는 것이다. 과격한 정치 집회를 자제하고 비운동권 학생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대학의 '탈(脫) 정치 분위기'가 이 같은 변화를 가능하게 한 셈이다.

실제로 서울의 주요 대학엔 보도블록으로 조성된 길이 많지 않다. 연세대 백양로, 고려대 다람쥐길 등에는 시멘트와 아스팔트 포장이 돼 있다. 연세대 관계자는 "보도블록을 깔지 말라고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70~80년대에는 국가 권력이 셀 때여서 학생들의 시위를 막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쫓겨났던 보도블록이 서울대에 다시 등장하게 된 명분은'친환경'이다. 공사 이름은 '걷고 싶은 거리 조성'이다. 흙으로 구운 보도블록을 깔아 환경 친화적인 캠퍼스를 조성하자는 것이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2003년 '에코 캠퍼스(eco-campus)'선언을 했고 건축학.조경학 교수 등 7명이'걷고 싶은 거리 조성 추진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서울대는 내년 6월까지 모두 50억원을 들여 보도블록 공사 등 친환경 사업을 벌일 예정이다.

박성우.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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