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요청하면 병력파견 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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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가 4일 극심한 허리케인 피해를 본 미국에 대한 지원 대책을 공개한 가운데 피해 복구를 위한 한국군 파견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4일 정부의 합동 대책회의에선 병력 파견 여부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며 "단 미국의 요청이 있으면 군 차원의 지원 여부를 국회와 협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 군 파견 가능할까=한국군이 피해 복구를 위해 미국 본토에 파견된다면 이례적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미국이 자국 내 복구나 치안 확보 등을 위해 외국군을 요청한 전례는 없다.

미국은 이라크전 이후 10만 이상의 병력을 이라크에 상시 주둔시키면서 만성적인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허리케인 피해 지역에서의 치안 부재와 인력 부족에는 이 같은 원인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군을 포함한 인력 지원을 요청한다면 명분이나 실리에서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이미'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미국에 전달한 상태다. 여기엔 일본 등 여유 있는 나라와는 달리 재정 지원에 한계가 있는 한국으로서는 '사람'으로 한.미 우호 관계를 보여줄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실제로 정부는 4일 민관 합동으로 3000만 달러 지원을 밝혔지만, 이 액수는 지난 남아시아의 쓰나미 지원금 5000만 달러에 못 미친다.

◆ "한국군이 적격"=전 세계 국가 중 미국이 본토에서 '활용할 수' 있는 통제된 군 병력은 한국군 정도가 유일하다는 것이 군의 시각이다. 한국군은 50여 년간의 한.미동맹 체제에서 사실상 미군과 대체 가능한 구조로 육성돼 왔다. 양국 합동훈련과 같은 전시대비 훈련은 물론이고, 통신 장비로부터 대민 지원(민사작전) 교범에 이르기까지 장비.교육.편제 등에서 미국식 규범이 한국군 운영의 기반이 됐다. 언제 어디에서건 한.미 양군이 공동 편제돼 대민 활동을 벌일 수 있다는 의미다. 군 관계자는 "대형 홍수.산불 등에 거의 매년 투입되고 있는 한국군은 재난에 대비한 대민 지원 경험도 풍부하다"고 말했다. 군에 따르면 해외에서 피해 복구.부상자 치료에 나섰던 공병.의료 부대의 인력도 축적돼 있다.

◆ 조심스러운 정부=그러나 정부는 이런 논의를 시기상조로 본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미국 측에서 말이 없는데 우리가 먼저 병력 파견 얘기를 꺼낸다면 외교 관례상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했다. 어디까지나 상대국의 입장이 먼저라는 얘기다.

또 부시 행정부가 정치적 공세에 시달릴 수 있는 외국군 요청에 동의할지도 의문이다. 효율성 면에서도 군 수송함을 이용한 굴착기 등 복구 장비 수송에는 시간이 걸리는 단점이 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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