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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작은 일에 목숨 안 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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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지난 31일 오전 중앙언론사 논설.해설 책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 간담회를 갖고 국정 현안 전반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서울=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이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선거제도를 마련해달라며 연일 대연정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임기 단축' '2선 후퇴' 등 상상력의 한계를 넘나드는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노 대통령은 왜 이럴까.

◆ "그냥 말로 하는 얘기 아니다"=참모들은 "결코 명분에 집착하는 오기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한 핵심 참모는 "노 대통령은 작은 일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고 했다. "노 대통령이 '무엇을 건다'고 할 때는 그 얘기를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얘기다.

김우식 비서실장 전격 교체는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다. 김 실장은 평소 "대통령이 그만두겠다는 건 말려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이 사석에서 노 대통령에게 "이런 큰 문제는 사전에 당과 상의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노 대통령은 정색하며 "내 참모들도 모두 임기 단축에 반대하고 있다. 심지어 참모들 대장인 비서실장도 동의를 하지 않는데 내가 당신들과 사전 협의를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는 전언이다. 또 다른 참모는 "바둑으로 치면 노 대통령은 이미 예상 가능한 수순을 다 읽어 놓은 상황"이라며 "목표가 서 있고 상대의 반응과 국면에 따른 전술을 구사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 목표는 뭔가=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임기 단축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이 거론하면 그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각오와 결단을 얘기한 것"(김만수 대변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한 핵심 비서관은 "선거구제 개편만을 위해 임기 단축까지 거론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노 대통령은 결국 정치적 과도기인 1987년에 정파의 이해관계 속에 탄생한 '한국형 대통령제'를 바꾸겠다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행정 권력과 의회 권력이 나뉘어 여소야대의 각종 후유증이 나타나는 한국형 정치 구조를 변혁하겠다는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청와대 내 핵심 그룹에서는 이미 '노 대통령의 임기 단축-여당 의원 총사퇴-개헌 협상-대통령.국회의원 임기 조정을 포함한 개헌-동시 선거'등의 수순도 거론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정치판을 흔들고 있는 것은 결국 변혁의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뜻으로 분석된다.

◆ 대연정 참모는 누군가=대연정 문제와 관련, 노 대통령은 주로 이병완 비서실장, 문재인 민정.이강철 시민사회, 조기숙 홍보 수석 등과의 오찬에서 의견을 수렴한다는 전언이다. 비서관급으로는 조재희 국정과제비서관이 학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윤태영 부속실장, 이호철 국정상황실장, 김만수 대변인, 김종민 국정홍보비서관 등이 노 대통령의 주문에 따라 의견을 내고 있다. 연정과 관련한 강원택 교수의 책을 노 대통령에게 소개한 곳은 국정상황실이다. 물론 공식 태스크 포스는 아니다.

충분한 법률적 검토와 해외 사례 연구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31일 논설책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우리 헌법엔 대통령의 사임을 전제로 한 규정이 있다"며 자신이 '헌법의 틀'안에서 행동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또 미국.독일.프랑스 심지어 브라질의 연정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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