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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회 상장 추진, 증시 달굴 호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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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정부가 한국마사회와 같은 우량 공기업의 상장을 추진 중이다. 시중에 떠도는 부동자금을 증시로 끌어들여 침체된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투자자들의 우량주 갈증도 해소하자는 취지에서다. 17일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정부 내 협의와 설득을 통해 우량 공기업의 상장을 적극 추진할 예정”이라며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가진 한국마사회 같은 공기업이 이상적인 대상”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공기업 상장 카드’를 꺼내든 건 지난달 발표한 자본시장 활성화 대책을 마련하면서였다. 금융위 관계자는 “우선 상장 가능한 공기업 리스트를 만들어 관련 부처들과 협의를 해 왔다”며 “다만 시간이 걸리는 일인 만큼 당장 대책에 포함시키지는 않았으며 향후 지속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위가 공개한 자본시장 활성화 대책의 핵심은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의 주식투자 비중을 늘리는 내용이었다. 연기금 역시 초저금리 여파에 바닥까지 떨어진 수익률을 끌어올리려면 주식 투자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연기금이 살 만한 주식이 그리 많지 않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연기금은 수익률은 물론 안정성도 중시해야 해 담을 수 있는 종목이 제한적”이라면서 “국민연금 등은 이미 주요 종목들을 한도까지 채워놓은 상태라 현실적으로 투자 비중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거래소 등이 나서 민간 우량기업의 상장을 독려하고 있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거래소 관계자는 “신청만 하면 한 달 내에 상장 승인이 날 수 있을 만큼 우량한 기업이 100개가 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들 기업은 회사채로도 얼마든지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 있는 회사도 많아 굳이 각종 공시 의무와 주주들의 개입이 따르는 상장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전했다.

 투자자들의 ‘우량주 갈증’도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올 들어 기업공개에 나선 몇몇 ‘대어’에 시중 부동자금이 대거 몰린 게 방증이다. 인터파크INT, BGF리테일, 쿠쿠전자 등의 공모주 청약에 수조원이 들어온 것을 시작으로 지난달 삼성SDS, 이달 제일모직 공모에는 각각 15조원, 30조원이 넘는 자금이 청약 증거금으로 유입됐다. 우량 공기업 상장은 이런 시장의 갈증을 해소하고, 민간 우량 기업들의 증시 입성을 촉진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생각이다. 게다가 공기업 주식은 최근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가치·배당주의 대표격이다. 대부분 독점 사업이라 경기에 크게 민감하지 않고 꾸준히 이익을 낸다. 일반 기업에 비해 배당성향도 높다. 배당수익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올 들어 상장 공기업의 주가도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삼성증권 유승민 이사는 “대표적인 성장주였던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배당을 늘리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한국 증시가 점차 가치·배당주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들도 공론화는 꺼리면서도 내부적으로 공기업 상장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시장 활성화 효과 외에도 지분 판 돈으로 부족한 정부 ‘곳간’을 채울 수 있는 데다 공기업의 방만 경영을 개선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운영을 책임지는 기재부는 최근 한국거래소와 회의를 열고 공기업 상장 절차와 제도, 사례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기업 상장은 재무 상태를 개선하고 국가 재정을 늘리는 것은 물론 증시 부양 효과도 있을 것”이라며 “한국거래소가 자체적으로 상장 가능한 공기업 리스트를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공기업들의 상장이 현실화되려면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민영화 논란’이다. 이명박 정부 때 추진한 인천국제공항 상장은 민영화 반대 여론에 밀려 실패했고, 이번 정부 들어 설립한 수서발 KTX 자회사 역시 설립 과정에서 노조의 반대에 부닥쳐 상당한 진통을 겪은 전례가 있다. 이런 논란을 피하기 위해 금융당국 등이 주목하고 있는 건 이른바 ‘강원랜드’ 모델이다. 증시에 상장된 강원랜드· 그랜드코리아레저(GKL)의 경우 민간에 49%의 지분만 팔고 나머지 51%는 공공기관·기금 등이 지분을 갖고 있다. 관할 부처의 ‘밥그릇’ 의식도 현실적인 걸림돌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 전체의 총의가 모여야 추진력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근·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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