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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신의를 지키며」국내 독점 연재|(미소정상 대담) (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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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3면

나는 6월 17일 하오 회담석상에서 중동·아프리카·동남아 문제에 대해 나의 의견을 밝히고, 특히 세계곳곳에서의 쿠바의 군사동맹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그리고 그들의 최대 관심사인 미·중공 관계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미국과 중공이 30년이나 지난 이제서야 관계가 정상화 된 것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습니다. 양국의 관계 정상화는 미·중공 두 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어 「브레즈네프」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SALTⅡ 협상에는 다른 나라들도 참여해야 합니다. 또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도 의제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소련은 일부 미국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북아프리카에서 페르시아만에 이르는 지역의 안정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협력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이 몹시 멀리 떨어진 지역 (아마도 폐르시아 영을 가리키는 듯) 올 자국의 국가이익에 불가결한 곳으로 여기고 있는데 대해 놀랐습니다.
정통적인 국가 이익의 차원에서 말한다면 유럽은 소련에 극히 중요한 지역입니다. 소련은 유럽의 일부이며 2차 대전은 소련 국민들에게는 소름끼치는 경험이었습니다.
소련 지도자들은 미국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으려고 하며 동시에 미국으로부터도 똑같은 대우를 받고 싶어합니다.』
그는 이어 중동·동남아·중공문제 등에 관한 그의 의견을 말했다.
『소련군이 베트남에 진주하고 있다고 「카터」 대통령께서 주장하고 계십니다만 우리는 베트남에 기지를 보유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소련 상선이 일상적인 상행위를 위해 베트남 항구에 드나들고 소련 비행기들이 국제적 관례에 따라 기착하고 있을 뿐입니다.』

<소 대사관 연회 훌륭>
그날 저녁 소련 대사관에서의 연회는 퍽 유쾌한 것이었다. 식사도 전날 우리가 베푼 것 보다 훌륭했고 연회실도 우아했다. 그 둘 중 일부는 영어로 얘기했고 우리측에서는 「브래진스키」와「브라운」이 소련말로 대화를 나눴다.
밤늦게 나는 딸 「에이미」와 함께 미 대사관 관저에서 손전등을 들고 조깅을 했다. 나는 이미 연설과 회의로 지쳐 있었고, 다음날 있을 「브레즈네프」와의 단독회담과 양측의 마지막 전체 회의 등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다음 날(6월 18일) 아침 「브레즈네프」는 나와의 단독 회담을 위해 미대사관으로 왔다. 우리 두 사람 외에는 통역 두 사람만이 참석했다.
그는 중공 문제에 관해 얘기했다.
『소련은 미국과 중공의 관계 정상화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라도 중공의 반소 적인 태도를 소련에 손해가 미치도록 이용한다면 이는 큰 잘못이 될 것입니다. 미국이 중공을 승인한 후 중공이 처음 취한 행동은 베트남 공격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큰 우려 속에 지켜보았습니다.
중공은 미국이 정치적으로 그들의 뒤를 밀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잘 알다시피 중공은 일본·베트남·인도 및 필리핀의 영토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중공은 핵무기에 관한 국제조약에 구속받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위협이 더욱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다음 「브레즈네프」는 인권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소련이 이를 이데올로기의 바탕에서 논의하는데는 반대하지 않지만 국가 대 국가의 정책이라는 토대 위에서 논의하는데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인권 거론하자 딴전>
미국은 소·중공 관계를 포함해 국가간의 평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나는 강조했다.
또 미국이 중공과의 새로운 관계를 결코 소련에 해롭게 이용하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이어 우리는 미사일 실험 데이터의 암호화에 대해 깊이 논의했다. 나는 미국이 소련의 실험을 감시하지 않으면 안되고 이 때문에 터키 상공에 비행기를 띄울 수도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는 이 같은 나의 말을 듣고 소련도 미국의 실험을 감시하기 위해 쿠바 상공에 비행기를 띄울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그는 이 문제는 다음에 다시 연구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내가 시나이 반도의 UN 평화유지군에 관해 언급하자 그는 그의 통역이 건네준 서류에서 표시된 부분을 읽더니 소련이 UN군으로 참여하는 것은 이집트와 이스라엘간의 조약을 승인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므로 이에 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소련에서의 인권 문제를 끄집어냈다. 나는 그가 자발적으로 헬싱키 조약에 서명했음을 상기시키고 소련에 있는 「빈스」와 「시차란스키」등 반체제 인사들이 석방돼 미국에 올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시차란스키」가 간첩 혐의로 기소됐으며 소련의 지도자로서 자신은 소련국법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받아 넘겼다.
이윽고 빈 정상회담의 최종 정리를 위해 소련 대사관으로 가야할 시간이 됐다.
SALTⅡ 협정 조인 의식은 실로 감명적이었으며 엄숙했다. 우리는 서명을 끝내고 협정 서를 교환했다. 「브레즈네프」와 나는 악수를 나누고 서로 끌어안았다.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엔 서로 협력한다는 강한 느낌이 흘렀다. 나는 세계평화와 보다 나은 상호이해를 추구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그날 밤 워싱턴으로 돌아온 나는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의원들과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6년여의 긴 협상에서 미국의 세 대통령이 이룬 업적을 분명히 설명했다.
『SALTⅡ 협정은 이제까지의 군축 협정 중에서 가장 상세하고 광범위하며 포괄적인 조약입니다. 이는 핵전쟁의 위험을 감소시키는 조약인 것입니다. 이제 이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소련이 유리했던 핵무기의 숫자상의 불균형이 처음으로 해소됐으며, 양국의 전략무기 보유 면에서도 동등한 상한선이 그어졌습니다.
SALTⅡ 는 매우 중요한 조약이기는 하지만 단순한 무기제한 협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협정은 앞으로 SALTⅡ 협정아래 보다 포괄적이고 뜻 있는 핵무기 감축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요 불가결한 선행 단계인 것입니다.』
그후 수개월동안 나는 SALTⅡ 협정의 의회 비준을 위해 연설·기자회견·브리핑 등 활발한 로비 활동을 벌였다. 상원의원 개개인의 개인적·정치적 관심사를 분석해가며 상원의 표결을 전망했다.

<레이건, 협정 비난>
상원의 만만찮은 반대에 직면해 있었지만 미 소 양국이 성실함을 보여줄 수 있고 소련 지도자들에 대한 상원의 신뢰가 훼손되지 않는다면 비준 받을 가능성은 있었다.
그러나 SALTⅡ 협정은 곧 격렬한 공격을 받았다. 「레이건」공화당 후보가 SALTⅡ 협정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미국은 핵무기를 대폭 증강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SALTⅡ 협정에 치명적인 하자가 있다면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를 폐기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SALTⅡ 협정의 의회 비준과 핵무기 제한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협정에 실패한 것이 나의 대통령직 재임 중 가장 유감스러운 점이었다. 나는 미국과 다른 나라의 현명한 국민들이 미 소 초강대국의 지도자들에게 지구상으로부터 핵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설득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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