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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 풀릴 행정도시 서로 싸우는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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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충남 연기군 남면에 사는 A씨(45) 등 형제 2명은 큰형(58)을 상대로 상속받은 부동산을 나눠달라며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소송을 지난달 대전지법에 냈다.

A씨는 "10여년 전 아버지가 사망할 당시 유언이 없었는데도 큰형이 부모를 모셨다는 이유로 집과 텃밭 1000여 평(2억5000만원 상당)을 몽땅 가졌다"며 "법적으로 보장된 상속지분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의 큰형은 "지금까지 동생들이 아무 말이 없다가 땅값이 오르자 욕심이 생긴 것 같다"며 허탈해했다.

▶ 충남 연기군 남면 주민들이 토지보상 조사에 협조한 주민들의 차량을 출입 통제하고 있다.[김방현 기자]

행정도시가 들어서는 연기.공주 지역이 12월부터 4조5000억원 규모의 토지보상을 앞두고 뒤숭숭하다. 형제.문중 내 재산권 소송이 줄잇는가 하면 추석명절을 앞두고 갑자기 성묘객이 늘어나고, 눈도장 찍기 위해 부모를 찾는 '효자'들도 늘고 있다. 일부 주민은 행정도시 찬.반으로 나뉘어 마찰을 빚기도 한다.

◆ 소송 잇따라=형제뿐 아니라 문중 간 소송도 상당수다. 연기군 내 대표적인 한 문중은 지난달 중순 문중 회원 3명을 상대로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종중은 40여년 전 연기군 금남면 임야 2만여 평(30억원 상당)을 사들인 뒤 편의상 이들 3명 명의로 등기, 관리해 왔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한 명이 몇 개월 전부터 땅을 팔아 자신의 몫을 챙기겠다고 나섰다. 문중 관계자는 "수 차례 설득하다 포기하고 결국 소송을 냈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전지법에 따르면 행정도시 보상 관련 업무가 본격 시작된 7월 연기.공주 지역에서 접수된 재산다툼 관련 소송 건수는 10여 건에 이른다.

◆ "부모에게 잘 보이자"=지난달 28일 연기군 남면 고정리 마을회관 앞에 40대 남자 1명이 승용차에서 예초기를 들고 내렸다. 서울에서 벌초하러 왔다는 이 남자는 주민들에게 "삼봉산에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데 위치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야산을 한동안 헤맨 끝에 묘지를 찾았다. 주민 원용자(51.여)씨는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위해 마을을 찾는 낯선 얼굴이 많다"며 "보상금 때문에 수 년간 나몰라라 했던 묘지를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향 부모에게 잘 보이려는 '효자'도 많다. 연기군 남면에서 5000여 평에 농사를 짓는 P씨(75)의 두 아들은 평소 발길이 뜸했으나 지난달부터 주말이면 번갈아 손자들까지 데리고 고향에 내려온다. 갈비와 건강식품 등 선물을 싸들고 찾아오기도 한다.

◆ 주민 간 갈등=지난달 27일 오후 5시 연기군 남면 갈운리 3구 마을 입구에서 주민 임모(54)씨와 또 다른 주민 5~6명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임씨가 자신의 봉고트럭을 몰고 집으로 가려 하자 주민들이 바리케이드로 길을 막았다. "보상을 위한 현지조사 작업에 응한 사람은 차를 타고 마을 출입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보상조사에 협조한 주민은 이 마을 47가구 가운데 8%에 불과하다.

연기=김방현 기자

***보상 대상(잠정)

▶가구 수 : 4180가구

▶토지 : 2212만 평(연기군 2064만 평, 공주시 148만 평)

▶건축물 등 지장물 : 4911동(집 3406동, 공장 177동, 창고 1328동)

▶분묘 : 1만5000여 기

▶보상 총액 : 4조5000여 억원

*자료 : 행정도시건설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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