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2) 제79화 제79화 육사졸업생들(45) 장창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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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6·25망시 1기생들은 대부분 중령에 진급, 연대장 또는 사단참모등으로 군의 중핵이 되어 있었다.
6·25가 터지자 이들은 전쟁의 최일선 지휘관으로 국가보위의 중책을 떠맡게 됐다. 숱한 전투를 치르며 군인으로 성장해갔고 더러는 호국의 재단에 젊음을 산화하기도 했다.
1기생 가운데 6·25를 통해 특히 활약이 두드러졌던 사람은 김점곤(전남광주·소장·사단장·현경희대경영대학원장) 임부택(전남나주·소장·1군단장) 임충직(전남해남·대장·합참의장·국방장관)장군 이다. 또 김동빈(함경도·소장·국방차관보) 황엽(강원철원·소장·3군단장) 김용주(준장·사단장)장군등도 활약이 컸다.
김점곤·김동빈은 다부동전투에서 연대장으로 적의 주공을 분쇄하는 전공을 세웠다.
2차대전당시 「처칠」이 스탈린그라드의 승전을 찬양해 『스탈린그라드 이전엔 승리가 없었고 스탈린그라드 이후엔 패배가 없다』고 했다지만 6·25에선 이 다부동전투가 바로 그같은 전기였다.
낙동강 방어선의 최요충인 다부동에서 우리 1사단이 적의 3개사단과 40일에 걸친 격전 끝에 적을 완전히 괴멸시킴으로써 무력으로 남한을 적화하려던 김일성의 계획은 좌절됐다.
부산 교두보가 확보돼 곧 미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상륙하고 전면적인 반격을 개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점곤은 1사단 예하의 12연대장으로, 김동빈은 11연대장으로 최영희장군이 지휘하는 15연대와 어깨를 나란히 싸웠다. 김점곤 중령은 6·25 개전 당시 보병학교에서 보수교육중 육본 정보국 차장으로 발령받고 부임하지않은 상태였다. 6월 25일아침 서울에 올라와 외출했다가 38선 충돌 급보를 듣고 상오10시30분쯤 육본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개성방면에 배치됐던 1사단은 적의 주공에 부닥쳐 후퇴중이었는데 그중에도 임진강 이북에 포진했던 12연대(당시 연대잠 전성호대령)는 부대가 분산됐다. 육본에선 급히 김중령을 12연대장으로 임명, 부대를 수습하게했다. 김중령은 파주·문산부근에서 12연대를 수습, 시흥에서 부대를 재편성한후 다부동까지 후퇴했던것. 나중 북진때 평양 입성 전투에서도 1착,명성을 날렸다.
개전초기 전전선에서 국군이 밀린 가운데 유독 적의 공격을물리친 부대가 춘천의 7연대.
임부택중령이 지휘한 7연대는 개전전 전사병이 새로 지급된 M1조작·사격훈련을 끝내는 준비가 있던데다 정찰활동으로 적의 수상한 동태를 파악, 6월25일 새벽 공격이 개시되자 즉각 응전에 나설수 있었다.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진지를 구축, 적의 공적을 물리치고 서울이 함락된 다음까지 춘천을 지키다 육본의 후퇴명령을 받고 후퇴했다. 임부택의 7연대는 후퇴중 음성에서 적의 15사단 2개연대와 조우, 골짜기에서 협격작전으로 적을 섬멸하는 전공을 세웠다. 6·25개전후 최초의 승리다. 이 공으로 7연대는 전부대원이 l계급 특진했으며 임중령은 1기생중 맨처음 7월4일자로 대령에 진급했다.
임부택은 나중 북진때 제일 먼저 압록강에 도착해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아 이승만대통령에게 보내기도 했다.
임충식장군은 유명한 백골부대 18연대장으로 용맹을 날렸다. 북괴군 부대가 백골부대라면 대결을 피했다는 얘기가 나들만큼 정예부대로 수많은 전투에서 무공을 세웠다. 다부동전투못지않게 치열했던 안강·기계전투에서 특히 활약이 컸다.
황엽장군은 옹진전투에서 대대장으로 출전해 한때 전사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생환, 연대장으로 6·25말기 「피의 능선」전투에서 용맹을 떨쳤다.
김복주장군은 이북출신으로 편성된 특수부대 38연대장으로 곳곳에서 유격전을 펼쳐 공을 세웠다.
1기생 가운데 무공으로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사랍은 김점곤·임부택·임충식 세사람인데 그중 임부택은 태극무공훈장을 둘이나 받았고 김점곤은 우리나라 훈장만 13개, 미은성무공훈장등 외국훈장4개등 무공훈장만 17개를 받아 무공훈장을 가장 많이 받은 장군으로도 꼽힌다. 그러나 앞서 밝힌대로 박광혁(대령·훈장추서) 이상근(대령·훈장추서) 고근홍(대령) 박승일(대령)이영규(대령) 우병옥(중령·대령추서) 유명우(대위) 등 1기생은 호국의 전선에서 산화했다. 우병옥·이상량은 개전초기에, 나머지는 북진했다가 후퇴하는 혼전중에 전사했다. 1기생중 정종근대령은 6·25전 공비토벌에서 전사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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