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물든 학생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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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서울 P여고의 점심시간. 머리끝 길이가 다르게 층을 많이 내 덥수룩해 보이는 여고생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일본에서 건너온 유행으로 지난 겨울부터 청소년층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이른바 '샤기 컷'(사진 위) 스타일이다. 1학년 김모(16)양은 "반 학생 35명 중 10명 정도가 샤기 컷이나 파마를 했다"며 "지난 학기까지만 해도 이렇게 층이 진 머리나 어깨를 넘는 긴 머리는 금지됐었는데 지금은 선생님들이 머리에 대해 뭐라 하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서울 B고 앞. 교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20여 명의 학생이 학교 정문 옆 운동장에 일렬로 서 있었다. 학생들은 모두 목을 덮을 정도로 뒷머리가 길었다. 교사들은 "최근 뒷머리의 기준이 '짧게 쳐올린 형태'에서 '옷깃에 닿지 않게'로 바뀌었지만 그보다 더 긴 머리를 고집하는 학생이 많아 단속을 안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날 두발 단속에서 지난 학기 초 검사 때의 세 배에 달하는 70명의 학생이 적발됐다.

최근 개학한 중.고교에서 두발 규제가 완화되면서 학생들의 머리문화가 바뀌고 있다. 지난 7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두발 자유는 학생의 기본적 권리이므로 교육 목적상 최소한의 범위에서 제한하라"고 교육 당국에 권고한 이후 나타난 풍경이다.

길이 제한이 완화된 학교가 많고 염색이나 파마 등에도 상당히 관대해진 분위기다. 갈색으로 염색한 서울 S고 3학년 유모(18)군은 "방학 때 염색한 머리 그대로 학교에 나왔는데 개학한 지 1주일 되도록 선생님이 지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학교 학생부 교사는 "10여 명의 학생이 아직도 염색한 상태"라며 "과거 개학하면 스스로 검게 물들이던 학생들이 이제는 주의를 줘도 버틴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두발에 엄격한 학교도 있다. 대구 D중학교의 한 학생은 최근 인터넷에 '선생님은 깎으란 말도 몇 번 안하고 바로 머리를 자르지 뭐예요. 자유? 기대도 못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서울 K고 2학년 김모(17)군은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규정을 바꿨다고 하지만 2~3㎝ 정도 완화된 게 전부"라며 "요즘 유행하는 구레나룻.긴 뒷머리까지 단속하는 것은 너무하다"고 말했다.

교육부 학교정책과 박교선 교육연구사는 "두발 규제 완화를 '두발 자유화'로 오해하는 학생이 많다"며 학생들의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백일현.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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