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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같던 미군장교도움으로 축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그 금덩이는 나의 전재산이자 생명입니다…』 14년의 오랜세월동안 장롱 깊숙이 고이 간직해온 금괴를 하루아침에 날려버린 정연수씨는 허탈해있었다. 『금괴를 밀반입해왔다는 약점과 세금추징이 두려워 시효 마감때까지 기다리다가 미련하게 사기꾼에게 넘겨준게 잘못이었읍니다.』
66년 군입대전 금은방점원이었던 정씨는 67년4월 비둘기부대에 파월(파월)돼 우연히 인근에 주둔하고 있는 미1사단 미군장교를 알게됐다. 정씨는 당시 대위였던 이 장교와 형제처럼 친숙하게됐고 치부(치부)의 행운을 안겨주었다.
약속한 시간에 미군부대에 트럭을 몰고가면 냉장고와 가전제품등을 헐값에 한트럭 가득히 실어올수 있었다. 이렇게해서 20여만달러를 모을수있었다.
귀국을 앞둔 정씨는 덩치큰 가전제품보다 부피가 작고 실속있는 금을 사모으기로 하고 1개월간 수소문 끝에 68년5월 사이공시 촐롱가에 있는 중국인금은방에서 문제의 금괴를 5만달러에 사들였다.
큰 성냥갑 크기만한 l백돈쭝짜리 금괴 8개와 49.9돈쭝 금괴 40개등 모두 3천75돈쭝.
정씨는 이 금괴를 사범 휴대용 귀국박스(길이l·5m, 폭1m. 높이는 80㎝)에 감춰 68년8윌 제대 귀국과 함께 무사히 국내에 들여왔다.
정씨는 이 금괴를 황색타월과 나일론보자기에 겹겹이싸 안방장롱 속에 신주모시듯 감춰두고 관세법 공소시효가 끝나는 날만 기다렸다.
살림이 쪼들릴때는 금괴일부를 떼어 아는 금·은방을 통해 팔았다.
정씨는 그동안 금을 한꺼번에 많이 팔아 사업자금을 마련하려고도 했으나 조금만 양이 많아지면 당장 금·은방가에 소문이 퍼질것이 두려왔다고 했다.
정씨는 친구가 건축업 동업을 하자고해 지난 2월1일하오9시 평소부터 알고지내던 박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금괴를 팔아달라고 부탁했다.
다음날인 2일상오8시 정씨는 남의 눈길을 피해 금괴를 보자기에 싸들고 박씨의 사무실로 찾아가 금괴를 넘겨주었다.
계약조건은 당시 한돈쭝 싯가 3만9천9백원보다 l백원씩이 비싼 4만원씩에 팔기로 했다.
이 금덩이는 이물질이 거의 없고 함량이 높은 순금이어서 비싸게 받을수가 있는 것이었다.
모두 1억2천2백여만원. 대금결제를 약속한 하오3시 정씨가 박씨의 사무실을 찾았을때는 이미 박씨는 007가방에 금괴를 챙겨 행방을 감춘 뒤였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찍힌 꼴로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았읍니다.』
정씨는 지난9개월동안 대전·청주등 박씨의 행방을 쫓아다녔다.
금괴를 빼앗긴 분함에 잠못이루는 밤에는 새벽4시에 일어나 서울공능동 박씨집 근처를 찾아가 한없이 배회하기도 했다고 한다.
『제자신 떳띳하게 금을 들여온것이 아니라서 박씨가 나의 약점을 이용, 금괴를 독차지하려 한것같아요.』 정씨는 얼빠진 사람처럼 멍해있었다. <정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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