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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상회화」부상 두드러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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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금년 여름부터 미술계는 한차례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내년도 한국현대미술 일본지역 순회전시 작가선정을 놓고 여기서 소외된 일부 작가들이 강한 반발을 일으켰다. 문제의 발단은 「70년대 후반의 한 양상」이라는 부제아래 일련의 단색조계열 작품만이 선정된 것을 항의하는 형식이었다.
잡다한 나열보다 집약적인 전시회 조직이란 점은 미술계의 일보 전진을 말해주는 것이었으나 그것을 인정하지않고 있었다. 문제는 70년대후반에 주류를 이룬 것이 과연 단색조경향으로 볼수 있느냐는 점이며, 그것은 오히려 70년대 전반기에 주류를 이루다가 지금은 퇴조를 보이는 양식이라는 비판은 얼마든지 설득력을 가질수 있었다.
그러나 항의자들 가운데는 단지 한국을 대표하는 전시회에서 자신이 누락된 것을 억울해하는 일부 작가들도 있었다.
여기에 초대작가·심사위원이라면 누구나 알아주던 「국전귀족」들이 좋았던 옛시절의 대우에 향수를 느끼며 가세했다.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 항의는 결국 작가선정에 참가한 평론가 5명중 몇사람에게만 화살이 돌려지면서 당국에 투서를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한편에서는 국전부활을 위해서 당국에 진정서를 내기도 했으며 그 항의의 한 결과로 「83년 현대미술초대전」에는 총 2백91명이 선정되는 일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올해에도 각광받는 신인들이 많이 탄생되었다. 전반기에는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에 수상된 이청운이 크게 주목받았다. 도회지의 「구석」을 차분한 색조로 의미깊게 표현하여 새로운 구상운동의 한 가능성으로 평가되고 특히 천애 고아로서 입지전걱인 노력을 보인데에 성원과 격려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해마다 탄생되는 신인들이 한결같이 단명하고 딜레머에 빠지는 것은 아직 감당하기 어려운 위치에서 과분한 상과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감내하지 못했던 까닭임을 생각할 때, 이런 스타탄생의 영광이 작가적 성장에 꼭 좋은 점만은 아니라는 느낌이다.
82년도 미술계가 현대미술운동에서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해라면 그것은 「신구상회화」의 강력한 부상이라는 점일것이다. 우리 미술계에 새로운 형상성이라는 이름으로 구상회화가 일어난 것은 70년대말 민전의 등장 이후였다. 여기서 젊은 작가들은 「하이퍼리얼리즘」을 밀고 나왔다. 비록 서구에서는 한물 간 낡은 양식이었지만 난해한 추상미술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참신한 느낌마저 주었던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현실과발언」같은 미술단체는 자신의 삶에 뿌리를 둔 시각의 확립과, 예술과 대중과의 의사소통 기능이 회복될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우리나라 미술풍토에서 추상미술, 특히 실험미술과 「모노크롬」의 울타리는 높았다. 현대 미술에서 구상에 연연하는것은 예술의 국제성과 현대성이란 명목으르 「촌놈」 취급을 하였다.
바로 여기에 큰 충격을 가한것이 금년 봄·여름에 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오늘의 유럽미술전」 「프랑스 신구상회화전」이었다.
「알랭·쥐프르와」라는 당당한 현역미술평론가와 「퐁피두 센터」 프랑스 외무성이 그 예술성과 현대성을 보충하는 이 전시들은 예술적 감동의 폭에서도 그랬고 그동안 오도된 국제성의 기준에 쐐기를 박았다.
이렇게 신구상회화는 자연스레 일어났다. 진부한 인상파의 장식효과주의가 아니면 난해한실험이라는 양극을 걷던 우리미술계에 이것은 큰 사건이었고 새로운 활력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국제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위트니미술관에서는 「구상회화20년전」이 기획되었고, 뉴욕근대미술관에서는 「키리코회고전」이 개최되면서 미국의 신표현주의운동에 열을 가했다.
프랑스에서는 「로베르·큰바스」등 30대의 신구상작가들이 각광을 받으며 니스박물관에서는 「시대의 기류-프랑스 자유구상」전이 열렸고, TV프로에 「미술을 대중에게」라는 특집까지 꾸며졌다고 외신들은 소상히 전하고 있다.
「카셀·도큐멘터」는 신표현주의가 휩쓸었고 국제화상협회(FIAC)에서도 신구상회화가 각광을 받았으며「베니스·비엔날레」는 이들을 소외시켰다해서 야유를 받았다.
언제나 미술사조가 바뀌면서 새로운 운동이 일어날때면 미술그룹들이 난무하는 것이 법칙같이 나타난다. 올해만해도 50여개의 젊은세대 그룹전과 일시적 전시회가 나타났다는 것은 이것을 웅변해준다.
이들은 한결같이 구상과 추상이라는 개념의 속박을 벗어나 나름대로 미술본연의 지평에 서서 새로운 예술형식을 찾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양하고 활기있는 83년도 미술계를 기대해 보게된다. 유홍준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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