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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블록은 황제없는 제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장기적으로 보아 소련제국은 패망할 것이라는 견해는 「레이건」미국대통령이 개진한 것이다. 그는 영국의회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행진은 과거 국민들의 기본적 자유를 억압한 다른 폭군정치를 쓸어버렸듯이「마르크스레닌」주의도 역사의 잿더미속으로 쓸어넣을 것이다.』「레이건」의 말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탈리아공산당지도자 「베륜림구에르」같은 사람조차 동구공산사회가 「발전과 개혁의 능력」을 상실했을지 모른다는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는점이다.
「레이건」, 「베를링구에르」 견해』로 표현할수 있는 이런 증상의 일면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은 동구권 여러나라를 다녀보면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 일면이란 서구가 현재 체험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위기를 소련이 겪고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위기가 필연적으로 종말로 치달을 것인지 아니면 다이내믹한 새 지도자를 맞아 중지 또는 역전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동구의 각계인사들도 서로 의견이 다르다.
공산주의가 대중들에게 풍요한 생활을 줄 능력이 없다는 「신념의 위기」는 동구각국에서 서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폴란드에서는 「레이건」만세』 또는 『군부지도자들은 모스크바로 가라』 는 등의 구호릍 외치는 분노한 근로자들이 소련의 국부「레닌」의 동상에 불을 질렀다.
68년 소련군의 개입으로 「정상화」된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아직도 가끔 「민주주의 벽」으로 알려진 프라하구시가의 흰벽에 반체제구호가 씌어지고 있다.
소련블록에서는 처음으로 실질적 경제개혁을 실시한 헝가리에서는 국민들은 빨리 부자가 되는 방법을 찾는데만 힘을 기울이고 있다.
소련에서 공산이념이 겪고있는 위기의 가장 좋은 증거는 「스탈린」에 대한 관심의 부활이다.
요즘의 「스탈린」숭배사상은 일반국인들로부터 올라오는 것으로 조국이 국제적으로 종경받고 국내적으로는 기강이 확립되기를 바라는 수세기전부더 내려온 갈망의 소산이다.
얄타협정이 조인된 리바디아궁의 방명록에는 「스탈린의 업적을 전시하는데 당국이 인색하다고 불평하는 방문관광객들의 촌평이 많이 씌어져있다. 다음과 같은 귀절이 좋은 예다. 『이 건물안에 「스탈린」의 단독초상화가 전시돼있지 않은것은 섭섭하다. 그분은 「처칠」이 영국국민에게 갖는 중요성과 같은 정도로 우리역사의 일부다.』「스탈린」이 사망한후에 태어났을법한 나이의 젊은 소련여배우와 저녁을 같이 한적이 있는데 이 여인은 「스탈린」 을 위대한 인물로 생각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방향감각을 잃었어요. 전국민의 10%가 열심히 일을 하고 나머지는 게으름만 피우고 있어요.
우리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스탈린」같은 인물이 필요해요.』
서양 패션과 서양음악에만 관심이 있는듯한 이 여배우가 숙청과 억압을 특징으로 하는「스탈린」시대의 부활을 진심으로 환영할 것같지는 않다. 아마 그녀의 부모로부터 주워들은 말같지만 여하튼 그녀의「스탈린」찬양은 l8년동안 계속된 「브레즈네프」시대의 방향감각상실과 정체에 대해 소련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반영하는것이다.
프랑스의 정치평룬가 「앙드레·퐁텐」은 소련블록을 「황제없는 제국」이라고 표현했다.
「브레즈네프」사망을 계기로 르몽드지에 쓴 글에서「퐁텐」은 「스탈린」 후계자중 「스탈린」에 버금갈 카리스마를 가지고 국민들의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유도해나간 인물은 하나도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크렘린이 군사적으로는 강대하지만 이념적으로는 허약해져 진실한 신도를 잃어버린채 덩치만, 서있는 종교의 본당과도 같다고 갈파했다.
공산주의가 갖는 이념적 매력이 쇠퇴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지도자들이 동구권을 보는 눈조리는 이전과 전혀 다르지않다. 「스탈린」 시대의 모든 소련지도자들은 얄타체제로 얻은 그들의 동구영향권을 지키는데 전력을 기울여왔다. 소련지도자들이 56년의 헝가리침공, 68년의 체코침공, 그리고 최근의 폴란드계엄령 선포 때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기위해 동원한 논리는 늘 같았다. 한번 수중에 들어온 영토를 내어놓을 경우 제국판도는 허물어진다는 생각은 소련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폴란드의 자유노조운동이 한창일 때 서방에는 폴란드의 「핀란드화」를 하나의 가능성으로 시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폴란드에 군사정이 들어서자 핀란드화」정도의 온건성조차 무리였음이 드러났다.
폴란드의 경제학자 「크라프치크」는 최근 바르샤바에서 배포된 지하전단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소련은 역사에서 폴란드에 관한 기본적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역사상 폴란드가 소련영향권밖에 있을 때는 반드시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이 쇠퇴했었다는 점이다.』
자유노조의 법률고문이었던 「쿠콜로비치」는 성공적 혁명은 4단계로 구분할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소련에 적용해서 그는 혁명 제1세대(레닌)는 볼셰비키혁명의 창시자이고 제2세대(스탈린)는 혁명의 확립자, 제3세대(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는 현상유지단계, 그리고 제4세대에 와선 혁명의 침식과정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소련은 지금 제3단계와 4단계의 중간지점에 있다. 「브레즈네프」의 죽음은 소련 뿐아니라 동구권에 대해서도 한시대의 종말을고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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