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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제2의 간송 전형필이 나올 때가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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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해외유출 문화재의 실체를 쫓았던 지난 반 년, 끝내 떨칠 수 없던 건 처참한 자괴감이었다. 어쩜 이렇게 쉽게 넘겨주고 철저히 빼앗길 수 있었을까. 서글픈 역사는 도처에 깔렸다. 일본의 도쿄국립박물관에 가보라. 경내 뜰에서 가장 먼저 관객들을 반기는 게 한 쌍의 조선 석상이다. 푯말에는 ‘한국 강원도에서 가져온 18~19세기 문관(文官) 상’이라고 적혀 있다.

동양관 5층 조선유물실에 올라가면 본격적인 수탈의 역사와 만나게 된다. 거부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가 대구에서 전기사업으로 번 돈으로 긁어모은 문화재가 전시돼 있다. ‘오구라 컬렉션’으로 불리는 유물들로 일본 중요문화재 8점을 포함, 1110점에 이른다. 단아한 푸른 고려청자에서 화려한 가야 금관에 이르기까지, 한눈에 봐도 국보급 문화재들이다.

 수탈의 비극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건 탱화다. 현재 국내에 있는 건 고려 탱화 5점. 반면 일본에는 고려·조선 탱화 80여 점이 전해 온다. 고려·조선 탱화전을 열려면 대부분을 일본에서 빌려와야 하는 게 서글픈 현실이다.

 문화재는 한 민족의 전통과 혼이 빚어낸 결정체다. 이런 한국의 문화재 중 엄청난 수가 이국 땅에서 방황하고 있다. 특히 일본에 많아 당국이 파악한 것만 6만여 점. 그러나 전문가들은 “30만 점 이상이 있을 것”이라고 추산한다. 특히 박물관·대학 등과 달리 개인이나 사찰이 소장한 문화재는 존재 여부부터 알기 힘들뿐더러 정보가 있더라도 접근을 거절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낙담하긴 이르다. 문화재 반환운동은 이제 시작이다. 위안부 문제가 본격화된 것도 1990년부터였다. 일본 사회당이 가이후 내각에 위안부 진상조사를 요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에서도 관심이 불붙었다. 중대사안은 수십 년의 무관심을 뚫고 얼마든지 관심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지금은 관심이 덜하지만 문화재 반환 문제도 언제든 한·일 간 최대 이슈가 될 수 있다. 특히 북·일 국교정상화가 논의되면 이 문제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자국 문화재라고 꼭 가져올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일단 가져오기로 결정되면 공적 영역에선 관계 당국이 열심히 뛰는 게 절실하다. 개인에서 박물관·국립대학 소유로 넘어간 문화재 반환이 여기에 해당한다.

 개인 소장의 문화재는 돌려받기 어렵게 보이지만, 의외로 쉬울 수도 있다. 깨끗하게 돈 주고 사들여오는 방법이 있는 까닭이다. 중·일 재력가들이 자국 문화재를 환수해 올 때 이렇게 한다고 한다. 한국의 경제형편도 나아졌고 문화 인식도 높아진 터라 제2의 간송 전형필이 나올 때도 됐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