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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앤 강추] 강릉 선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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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경포호 주변에는 궁궐 같은 고택 ‘선교장’이 있다. 이름을 풀면 이렇다. 예부터 사람들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다녔다 하여 선교(船橋), 식량과 물품을 직접 생산할 수 있다 하여 장(莊)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한옥스테이(hanokstay.or.kr) 중 ‘장’ 자를 쓰는 고택은 흔치 않다. 그만큼 규모가 크다.

연못가에 있는 정자, 활래정에는 시인 묵객들이 남긴 글씨가 많다.

선교장은 세종대왕의 형 효령대군의 11대손 이내번이 18세기 초에 지었다. 당시에는 사대부들이 관동, 즉 지금의 영동지방을 유람하는 게 유행이었다. 이들이 꼭 들러 쉬는 곳이 선교장이었다. 이후 300년간 증축을 거듭해 지금에 이르렀다. 1965년에는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됐다. 한데 90년대 들어 찾는 이가 거의 없었다. 다행히 이내번의 9세손 이강백 관장이 강릉시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강릉의 명물로 재탄생했다.

선교장은 총 103칸이다. 조선시대 민간 가옥은 최대 99칸까지 허락했던 걸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선교장에서 가장 오래된 안채는 전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ㄷ자 형태다. 식구가 늘면서 동별당·외별당·서별당을 추가했다. 여성들이 쓰던 연지당, 단체 손님이 묵던 중사랑채도 있다. 다른 고택에서는 보기 힘든 공간들로, 지금은 최대 40명까지 이용할 수 있다.

선교장은 총 103칸으로 이뤄졌다. 웬만한 궁궐이 부럽지 않은 크기다.

연못가에 있는 정자, 활래정도 근사하다. 시인 묵객들이 남긴 글씨가 많다. 1820년경 추사 김정희가 쓴 ‘단풍이 있는 산에 살리라’라는 현판도 있다. 1815년에 건립된 사랑채 ‘열화당’은 구한 말 러시아 공사관에서 받은 처마를 덧달았다. 지금은 작은 도서관으로 운영 중이다. 출판사 열화당도 이내번의 후손들이 세웠다.

선교장에는 예부터 식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풍류와 사교의 장이었던 만큼 화려한 상차림이 따르는 건 당연했다. 그 맛은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식당 ‘연’에서 300년 역사의 가승(家承)음식과 초당두부· 황태국·막된장 등 강릉 향토음식을 맛볼 수 있다. 4인 이상은 예약 필수다. knsgj.net, 033-648-5303.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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