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만에 재평가되는 안확의 사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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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안확(안확)이 『조선문명사』를 쓴 것은 지금으로부터 60년전인 1923년. 요즈음 그에 대한 연구가 그간의 적막을 깨고 활기를 띠고있어 관심을 모으고있다.
1970년대 이기백교수(서강대·한국사)가 그의 저작에 대해 논급한 이래, 80년대 들어 최원직(인하대·국문학) 이태진(서울대·한국사) 교수등이 연구에 손을대고 있는데, 그동안 안확은 그가 남긴 업적에 대해 지나치게 소홀히 다루어진느낌을 주어왔다.
안확의 생애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많지 앓다. ?산 이은상은 『잊을수 없는 스승』이란 글에서 『바로 내 스승 가운데도 손님들 앞에서 바지춤을 뒤지고 이를 잡아가며 도도한 변론으로 시국을 통탄하던 분이 계셨으니 그가 곧 자산 안확선생이다』라고 했다. 자산은 그의호. 그는 서울 태생으로 일본대학을 다녔다고 하나 자세한 학력은 잘 알려져 있지않다. 10세무렵 독립협회가 주최한 만민공동회(1898년 첫개회)에 참석, 연설지도를 받았다 하므로 출생연도는 1888년 무렵.
안확은 총4부43책의 방대한 저술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어려운 여건때문에 부분적으로밖에 이루지못했다. 『조선문법』 『조선무사영웅전』 『자각론』 『개조론』 『조선문학사』 『조선문명사』 『시조시학』 등 저서의에 많은 논설을 남기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조선문명사』.
이태진교수는 『근대 저술 가운데 이 책만큼 개성이 뚜렷한것도 드물다』고 지적하고 『그가 이 책에서 살피고자 한것은 우리 역사상 자치제를 발달시켜온 능력』이라고 설명한다.
즉 그것은 당대 역사의 큰과제였던 입헌주의·공화주의 실현의 가능성을 확인하려는 작업이었다는 것. 입헌·공화주의는 구한말부터 지식계에 풍미한 신사상이었지만 이를 우리역사에 직접 투영시켜 체제를 얻는데 성공한 경우는 이 책외엔 달리 찾아보기 어렵다고 이교수는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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