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의 새 헌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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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공을 다스리는 사람들이 헌법을 재대로 지키기만 한다면 중공은 나라가 선지 33년만에 처음으로 근대적인 국가의 틀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12월4일, 중공의 국회에 해당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채택하여 바로 효력이 발생한 새 헌법은 사회주의국가의 헌법답게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모택동 사상에 단단히 두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모택동과 문화혁명의 찌꺼기를 청산하는 규정들이 많이 들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새 헌법은 등소평과 호요방의 헌법이요, 경제건설을 위한 실용주의노선의 헌법이라고 부를만하다.
새 헌법은 국가와 법률을 당의 윗자리로 올리고, 모택동의 장기독재 같은 폐단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 한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과 한사람이 권력의 자리에 오래 앉아있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대통령에 해당되는 국가주석을 부활시켜 당 주석과 권한을 나눠 갖고, 국가주석, 부주석, 수상, 전인대 상무위원장(국회 의장격)을 비롯한 높은 자리의 임기를 5년으로 제한하고있다.
군대만 하더라도 지금까지는 중공군은 「공산당의 군대」로 되어있어 당의 지휘를 받아 왔는데 새 헌법에 따라서 국가중앙군사위원회라는 것이 새로 설치되어 나라 전체의 군대로 바뀌게 되었다.
모택동이 50년대에 만든 인민공사는 집단농장이라는 본래의 구상을 벗어나 정치와 경제까지 포함하는 넓은 분야에서 중공의 말단기관 노릇을 해왔다. 이것도 새 헌법에서는 하나의 「경제단위」로 기능과 권한이 제한되어 버렸다.
그 대신 성정부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이 크게 늘어나서 공산국가의 특색인 철저한 중앙집권에 변화를 가져왔다.
권력의 분산 쪽을 보아도 78년의 헌법에는 없던 규정들이 몇 가지 새로 채택되었다. 전인대의 권한이 강화된 것이 그 한가지다. 전인대가 열리지 않는 사이에 법률을 고치거나 각료를 바꾸는 전인대상무위원회의 「적절하지 못한 결정」은 나중에 전인대가 그것을 취소할 권리를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요직에 앉은 사람들의 겸직도 제한되고 나라의 주요기관들이 맡는 책임도 비교적 명확히 밝혀놓았다.
새 헌법 제30조는 「특별행정구」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대만의 회복에 대비하여 생긴 것이다.
헌법개정안 설명을 맡은 전인대상무위부위원장 팽진의 설명에 따르면 중공이 언제가 될지 모르는 장래에 대만을 수복하더라도 대만에는 고도의 자치권을 주어, 지금의 사회, 경제제도를 유지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인민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조항에서는 지금의 헌법에는 있는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없애버렸고, 「벽신문」붙이는 권리도 부활되지 않았다.
그러나 신체의 자유, 신앙의 자유, 개인의 존엄성, 가정의 신성함 따위는 새 헌법에 보장된다고 적혀있다.
헌법은 다른 일반법률과 마찬가지로 내용이 좋아도 안지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인민일보도 새 헌법에 관한 사실에서 『…무기가 아무리 훌륭해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고 했다.
특히 등소평은 정부의 자리를 갖지 않고 당중앙위원회 고문위원회 주임일 뿐이지만 내정과 외교에 큰 발언권을 갖고 있는 것이 벌써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하겠다.
결국 새 헌법은 하나의 틀이고 그걸 바탕으로 하여 중공이 근대국가의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와 진통과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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