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9) 제79화 제79화 육사졸업생들(32) 장창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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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군사영어학교가 개교된지 한달만에 교내엔 심한 회오리가 몰아 닥쳤다. 당시 우리 사회를 양분시켰던 반탁·찬탁 투쟁이 교내로 파급된 것이다.
휴식시간과 점심시간이면 학생들도 열기를 올리며 논쟁을 벌였다. 반탁세력은 역시 학병출신들이었다. 반탁의 우익계 학병중에선 백남권·김종면·최홍희가 중심인물이었다. 태권도를 하는 최홍희생도가 먼저 찬탁파인 최상빈을 때린 것이 계기가 되어 양파는 상호 테러로까지 확대됐다.
찬탁쪽에선 『반탁은 역적』이라는 표어를 곳곳에 붙이고 학교 주변에 그들의 요원을 배치하여 반탁자를 협박하고 등교를 못하게 방해했다. 당시는 지금처럼 기숙사가 있었던것이 아니고 각자 자택에서 등교·하교를 했다.
그때 반탁파중에선 민기식·김종오·정만기생도등이 좌파생도들로부터 직접 테러를 당했다.
강의시간에 권용준교수가 『지금 우리는 좌우 사상의 혼란기에 있다. 자칫하면 공산주의에 당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가 좌익계의 집단항의로 학교측이 권교수에게 사직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실정은 「사상의 자유」와 「불편부당」을 모토로 하고 있을 때였다.
부교장격인 원용덕장군이 나서서 『정세를 설명하는 도중에 개인적인 소견을 피력한 것 뿐이며 교수에게도 개인적인 사상의 자유는 허용돼야 한다』고 변호하여 권교수는 「경고처분」으로 끝났다.
찬탁파는 만군계의 최남근·이병위·이상진, 일본육사출신의 김종석·조병건·오일균, 학병출신의 하재팔·최상빈등이었다. 이들은 임관되긴 했지만 그후 여러가지 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대부분이 숙군대상이 되었다.
이같은 소란속에서도 군영의 교육은 진행됐다. 군사영어가 주였으나 그밖에 한국역사·참모학·소총분해·자동차 운전교육같은 강좌도 마련됐다.
영어는 매일 시험을 보아 성적에 따라 반을 옮겼다. 개교 40여일만인 1월15일자로 군영은 첫 장교를 임관시켰다.
군번13번인 나와 이병위(만주군관학교출신·함남정평·숙군때 총살) 이상진(만군소위· 함북·숙군때 희생) 김영환(학병소위 서울·6·25때 공군으로 전사) 강문봉(만주군관학교·만주용정·2군사령관·중장) 민기식(학병소위·충북청원·육참총장·대장) 임선하(학병소위·함남·소장) 박병권(학병소위·충남논산·3군단장·중장) 박기병(만군하사관·평남중화·5관구사령관·소장) 장군등이 같은 날자로 신생국군의소위가 됐다.
군영은 또 같은 날자로 일군대위였던 이형근장군(충남공주·육참총장·대장)과 일군소좌였던 채병덕장군(육참총장·소장)등 2명을 대위로, 유재흥(일군대위·충남공주·1군사령관·중장) 장석륜(구한국군대좌·일육사27기·대령예편) 정일권(만군대위·함북경원·전육참총장·대장) 양국진(만군중위·평남·3군단장·중장)장군을 중위로, 문리정(만군중위·중령예편) 김홍전(만군중위·대위때 교통사고사망) 이영순(일 해군중위·중령예편) 최주종(만군중위·함북성진·군수기지사령관·소장) 최경연(일군소위·충북음성·육참총장·중장) 이춘경 (일군소위·평남·준장) 장군등을 소위로 각각 특별임관시켰다.
이후 군영은 10여차에 걸쳐 순차적으로 장교들을 배출해 나갔다. 군영출신으로 국군장교가 된 사람은 기록상 군번 1번 이형근장군부터 1백10번 이응준장군까지 모두 1백10명이다. 그중 내 앞 군번의 12명과 원용덕·이응준장군은 실제론 군영교육을 받지 않고 임관한 분들이다. 군영출신으로는 내가 첫 임관이 되는 셈이다.
군번1번 이형근장군은 1백10번 이응준장군의 사위. 사위와 장인이 군영출신의 처음과 끝을 장식했다.
이처럼 이응준장군이 사위보다 임관이 늦었던 것은 당초 미국이 창군 작업에 소장층을 중심으로 하고 과거 일군의 고위 계급자등을 됫전으로 돌린 때문으로 이장군은 배후에서 창군의 자문역만을 맡다가 뒤늦게 군에 참여한 것이다. 일군에서 선배였던 채병덕장군이 한참 후배인 이형근장군 다음 군번2번이 된것은 서류접수 순으로 군번을 매긴 탓이었는데 이때문에 채장군은 가끔 불만을 떠뜨렸으며 두분 사이가 서먹해지기도 했다.
만군의 리더격인 부교장 원용덕장군(만군중좌)도 2월9일자로 뒤늦게 소령으로 임관했다. 60명으로 출발한 군영은 나중 학생이 2백여명으로 늘었고 그중 일부는 군정청 관리로도 전출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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