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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학교 밖서 한 학년 "삶 목표가 달라졌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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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아일랜드의 세인트 데이비스 홀리 페이스 중등학교 학생들은 전환학기 중 교과 공부 외에 스스로 선택한 다양한 활동을 한다. 농장 체험활동에 나선 학생들이 진흙 웅덩이에 들어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학생들은 “전환학기 동안 아쉬움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 세인트 데이비스 홀리 페이스 중등학교]

아일랜드는 1974년 전환학년제를 도입했다. 한국의 중·고교에 해당하는 중등과정 중 주니어 과정 3년을 마치고 시니어 과정(2년)에 들어가기 전 1년을 이 전환학년제로 운영한다.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가 나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 영어·수학·역사·지리학·종교·체육과 아일랜드 토착어인 게일어 등 핵심 교과 수업을 병행한다. 2012년 기준으로 대상 학생 97%가 전환학년제에 참여했다. 국내 자유학기제와 유사한 제도를 40년간 운영해온 아일랜드에서 학생들은 어떤 효과를 보고 있는지 들여다보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으로부터 남쪽으로 한 시간가량 기차를 타고 가면 그레이스톤스가 나온다. 1만5000여 명 정도가 사는 마을이다. 이곳 세인트 데이비스 홀리 페이스 중등학교에서 전환학년을 마쳤거나 현재 참여 중인 학생 5명을 만났다.

왼쪽 뒷줄부터 시계방향으로 키런 시히, 오신 오설 리번, 리키 데이비스, 이샤 울리, 니브 헤거티.

 5학년 리키 데이비스는 지난해 전환학년 동안 ‘기업’ 과목에서 친구들과 인터넷 기반 게임회사를 세웠다고 했다. 그는 “결국 파산하긴 했지만 배우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5학년 오신 오설리번은 “전환학년제 덕분에 영어교사격증(TEFL)을 땄는데 여름에 스페인에 가면 교사도 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5학년 이샤 울리도 “전환학년제에 만족한다.”고 했다.

 전환학년에 참여 중인 4학년 니브 헤거티는 “이전까지는 짜여진 틀에서 공부하면 됐는데 올해는 내가 주도권을 갖고 해야 해 처음엔 적응이 힘들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학교 트리오나 브로스넌 전환학년제 코디네이터는 “전환학년의 용도는 학생이 스스로의 한계를 확인하고 안주하는 데(comfort zone)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며 “노력한 만큼 얻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해 교사들에게도 부담이 되지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부모들은 1년동안 자녀가 공부 습관을 잃을까 걱정한다던데.

 ▶이샤=그렇지 않다. 오히려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리키=내 경우엔 공부 습관을 되찾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긴 했다. 하지만 전환학년제의 장점이 단점을 압도한다. 순례자의 길인 스페인 카미노를 1주일간 걸었는데, 정말 아름다운 걸 봤다. 절대 잊지 못할 거다.

 -전환학년제 전후로 과목 선호가 달라지나.

 ▶이샤=원래 생물학과 지리학을 선택했는데 5학년엔 역사와 회계학으로 바꿨다. 진정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게 됐다.

 브로스넌 코디네이터는 “우리 학교의 최우수 졸업생들은 대부분 전환학년제 출신”이라고 전했다. 블랙록교육센터의 팻 시버 국장도 “오랜 연구 결과 전환학년제 출신 학생들이 대학 1학년 때부터 월등하게 낫다고 결론났다.”며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돼 방황을 덜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루할 때도 있었을 텐데.

 ▶오신=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수업시간표에 표기된 것 외에도 늘 할 일이 있었다. 나와 리키·이샤는 학교 축제를 위한 후원금을 모금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정말 많은 일을 해야했다.

 ▶리키=4000유로가 목표 인데 가게에 들어가 처음 만난 사람에게 후원요청을 했다. 공손하게 말하면서도 설득력이 있어야 했다. 계산프로그램인 스프레드쉬트도 배워야 했다.

 -시험이 적어 스트레스가 덜하다고 들었다.

 ▶리키=스트레스의 종류가 다르다. 스스로의 한계를 확인하는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다. 공개연설 과목 때 사람들 앞에 서면 공포감을 느끼곤 했다. 몇 차례 반복 후 괜찮아졌다.

 4학년 키런 시히는 “예전에 말을 걸어본 적 없는 아이에게도 말을 걸고 나와 친구가 될 거란 생각을 못해 본 아이와도 친구가 됐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한국에서도 자유학기제를 전면 시행할 예정인데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냐”고 묻자 앞다퉈 의견을 냈다.

 “선택이어야 한다. 싫은데 해야 한다면 전환학년제의 특별함이 사라질 것이다.”(니브)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좋다. 가정(家政) 수업을 듣지 않았으면 난 요리는 커녕 물도 태워먹을 사람이다.”(오신)

 “학생들을 시험에 들게 해야 한다. 통상적 시험이 아니라 암석 등반 등 다양한 활동에서다. 그저 시험이 없는 해가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리키)

그레이스톤스=고정애 특파원 ockham@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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