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에 눈 돌린 러시아 "한국과 경제특구 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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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러 경제포럼’에 참석한 유리 트루트녜프 러시아 부총리는 “천연 자원뿐만 아니라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한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러시아 경제가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에 직면했다.”

 투자전문매체인 마켓워치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서방의 경제 제제와 유가 하락 등으로 총제적인 난국에 처한 러시아의 상황을 9일(현지시간) 이렇게 진단했다. 주식시장의 약세에 국채 금리 급등이 더해지며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고 덧붙였다.

 최근 러시아 경제는 위태롭다. 루블화 가치는 유가가 본격적으로 하락한 최근 2달 동안 달러 대비 26% 가량 떨어졌다. 올 들어 하락폭은 40%가 넘는다. 마켓워치는 러시아 국채 금리도 최근 1년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10년 물 기준으로 지난주 6.2%를 기록했다. 국가 부도 위험을 반영한 신용부도스와프(CDS) 금리도 2009년 7월 이후 가장 높다. 위기를 맞은 러시아는 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른바 ‘신 동진(東進)정책’이다. 전진기지는 극동지역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밝혔듯 극동 지역 개발이 전략적 우선 과제로 선정됐다. 북한과는 이미 철도 현대화 사업과 나진-하산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고 있다.

 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러 경제포럼’은 러시아의 이런 전략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한국무역협회와 주한러시아 무역대표부·한러상공회의소가 함께 개최한 이 행사에 유리 트루트녜프(59) 러시아 부총리 겸 극동연방지구 대통령 전권대표와 알렉산드르 갈루슈카 극동개발부 장관, 극동지역 7개 주 지사 등 대규모 대표단이 참석했다. 트루트녜프 부총리는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과 러시아 사이의 경제 협력에 대한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특히 극동 지역의 성장성과 사업성을 강조했다. 사실 극동지역은 러시아에서도 소외된 곳이다. 러시아가 유럽에 치중하면서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극동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인프라가 뒤쳐져 있지만 푸틴 대통령이 이른 시일 내에 개발하라고 지시하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연방 정부 차원에서 자동차 도로나 철도 등 인프라 구축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면서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업성도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러시아 영토의 36%를 차지하는 극동지역은 천연 자원이 많은 데다 에너지와 관광 분야에서 충분한 사업성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유럽 기업과의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한국 기업이 치고 나갈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경제 특구 성격의 ‘선도개발구역(또르)’도 구축하고 있다. 투자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광범위한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통관 등 행정 정차를 간소화하는 한편 기본 인프라를 갖춘 곳이다. 연해주와 하바롭스크주, 아무르주, 사할린주 등을 검토하고 있다.

 “선도개발구역이 러시아뿐만 아니라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최고의 사업 환경을 갖추는 것이 푸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그는 말했다. 한국과 러시아가 함께 특구를 건설하는 방안도 제안하며 “한국 측에서 어떤 지역에 특구를 조성했으면 좋을지 제안해주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중국, 한반도의 접경지역에 있는 자루비노항의 자유항 추진에 대해서는 “사업 추진 명단에 올라가 있고, 검토하고 있다. 올해 회의에서 결과가 나올 것이다. 발표는 그 이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시범 운항(러시아 우스트루가항~전남 광양항)에 성공한 북극 항로 개발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그는 “북극 항로를 이용한 운항이 성공하면 한국은 물류에 있어서 시간과 비용을 혁신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항로가 개척되면 러시아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중국 등의 물류도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북극 항로 개발은) 많은 인프라가 필요한 큰 프로젝트인 만큼 구체적인 방안이 확정된 것은 없지만 한국과 공동 개발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의 의지가 강한 만큼 빠른 시일 내에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하현옥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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