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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미·일의 반도체 개발 전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반도체가 갖는 특성이 기업간의 경쟁을 가열시킨다. 반도체는 대략 4년마다 새로운 제품이 개발된다. 따라서 누가 먼저 우수한 반도체를 시장에 내놓는가가 기업의 흥망과 직결된다.
신제품을 시장에 출하하면 비싼 값으로 많은 물량을 팔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얼마 동안 일뿐 다른 기업들이 신제품을 모방, 약간의 이익만을 붙여 가격경쟁을 벌이게 되면 값은 절반정도로 뚝 떨어진다. 이 때문에 반도체 생산회사들은 신제품이 시장에서 인기리에 팔릴 때쯤 새 제품의 출하를 준비해야한다.
철은 1t에 24만원 정도지만 가공된 실리콘 반도체는 lt에 무려 72억원이나 나간다. 그 때문에 반도체 시장에서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가 곧 누가 돈올 지배하느냐는 의미로 통한다.
이런 반도체의 특성 때문에 이 분야에서는 기업윤리를 도의시한 국가간·기업간의 스파이행위와 스카우트전이 끝없이 반복된다. 다른 기업이 수년간 수많은 두뇌와 개발비를 투자, 개발한 신제품의 설계도만 얻어낸다면 실제로 개발한 기업과 비슷한 시기에 같은 제품을 더 싸게 내놓을 수 있어 그야말로 1석2조.
그래서 많은 반도체 회사가 몰려있는 실리콘밸리(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소재)나 텍사스의 휴스턴부근, 일본 규우슈(구주)의 반도체, 아일랜드 등에는 전·현직 수사요원들의 채용이 늘어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전직 FBI요원들을 연사로 초빙한 「기업의 기밀유지방법」 등의 세미나가 항상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현직 FBI요원들도 미국의 최신 기술을 빼내려는 소련의 스파이, 일본의 기업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여러 직종으로 위장근무하고 있다.
지난 7월 히따찌(일립)·미쓰비시(삼능) 등 일본의 전자메이커가 산업기술 절취사건에 걸려든 것도 FBI가 차린 유령회사에 입수를 의뢰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실리콘밸리·실리콘 플레인(텍사스 휴스턴근교 평원지대의 반도체 공업지대) 등에 공장용 차려놓거나 지사를 갖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정보입수에 나서고 있다.
소련은 샌프란시스코공관 영사직에 공학기술자룔 임명, 이 영사의 지휘하에 약 60명의 KGB요원들이 「민감한 기술」입수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일본의 히따찌 등이 생산하고 있는 64K비트 기억소자가 미국의 16K비트짜리 설계를 4개 합친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리콘밸리의 한 수사관은 최근 5년간 약 l억달러가치의 기술정보가 도난 당했다고 분석한 일이 있다.
이에 대해 일본은 일본대로 다론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IBM이 출자한 일본 IBM 등 미국의 여러 회사들이 일본에 공장을 차리면서 고급료라는 미끼로 일본의 고급연구원·기술자들을 유혹해 기술을 빼내고 있다고 반박했다.
같은 국적을 가진 기업끼리의 스카우트·기밀절취도 예의는 아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69년 내셔널 세미콘덕터사에 의한 페어차일드사 반도체부문 제2책임자 「C·스포크」스카우트 사건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던 페어차일드사는 「스포크」를 비롯한 반도체 설계, 생산핵심 요원 5명을 잃고 난 후 적자가 누증된데다 70년 영업사원들이 대거 AMD(어드밴스드마이크로 디바이스)에 스카우트되면서 결국 견디지 못하고 79년 프랑스계 회사에 넘어가는 비운을 감수해야 했다.
스파이에 의한 기밀 절취·거래사건도 끊이지 않는다. 78년9월 내셔널세미콘 덕터사에는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라이벌업체인 인텔사·최신 제품의 설계를 수록한 테이프를 1백만달러에 사라는 제의였다. 정보내용은 인텔사의 1K비트·4K비트의 특수기억소자와·16K비트·32K비트의 기억소자, 새로운 마이크로 컴퓨터의 공정과 회로 등 그야말로 인텔사의 심장부를 전부 망라한 것이었다.
결국 너무 어마어마한 정보에 놀란 세미콘덕터사가 경찰과 인텔사에 연락, 2명의기술 암거래상이 체포됐지만 만약 이 기술이 그대로 나갔다면 인텔사가 입는 타격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근무자들에 의한 IC절취사건도 많다. 16만명이 근무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에서만 연간 약2천만달러 어치의 반도체가 직원들에 의해 암시장으로 흘러드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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