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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뒤틀리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일상의 어투도 그렇고, 문학속의 어법도 그렇고, 말이 많이 뒤틀리고 있다. 나의 작품도 그렇고, 다방에서 옆좌석의 대화를 들어보아도 그렇고, 친구들의 어법도 그렇고, 학생들의 어투도 그렇다. 유머조차 그것이 본래 지니고 있는 화해의 정신에 금이 가고 차츰 풍자성을 띠고 있다. 이른바 블랙 유머가 그것이다.
말이 뒤틀린다는 사실은 개개인의 의식구조가 제 질서를 유지하며 평안히 있을만한 사정이 못된다는 점을 예증하는것 이외 아무것도 아니다. 이럴 때 내부가 아니라 외부로 향한 적대감의 전형적인 표현 방법이 풍자이다.
풍자의 특성은 직접적인 꼬집음이 아니라 빗대고 비유하거나 변죽을 울리는 그 표현방법상에 있다. 그러한 방법으로 경계하거나 나무라거나 꾸짖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풍자 또한 필요의 산물로 이 세상에 나타난 우리들 인간의 의사 표현 방법이다. 바로 집어 말할 수 없는, 빗대고 비유로 말할 수밖에 없는 역사의 상황이 우리의 사고 기능을 자극하여 생산한 지혜의 하나이다. 풍자 문학이 사회의 죄악이나 불미한 점을 들어 어떠한 형식으로든지 비꼬아 질러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적 모순이나 갈등, 그리고 이념과 실제 사이의 오차에 대한 응전의 한 양상인 것이다.
시대가 풍자를 낳고 인간은 그것을 표현한다. 그런 만큼 신랄한 풍자의 시기란 결코 행복한 시대라고 말하기 어려운 법이다.
앞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풍자는 유머와는 다르다. 풍자는 이해하려는 노력의 의지보다 그것을 포기한 후의 비난하려는 의도의 소산이며, 사랑과 극기의 의지보다는 문책하고 교정하고자하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
때문에 종종 풍자가는 도덕적 모순에 빠질 염려가 있는데, 그것은 남을 비난하거나 문책하거나 하기 위해 비꼰 그 점을 스스로 지니고 있을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풍자된 내용 그 자체는 그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될 수밖에 없는 탓이다.
풍자에 사용되는 어조에는 욕설·조소·냉소·조롱·비꼼·기지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세련된 것이 아이러니(비꼼)와 위트(기지)다.
그런 만큼 일반적으로 횡행하는 풍자 화법에는 욕설·조롱·냉소·조소등이 주로 등장한다.
그것들이 즉각적 반응을 얻는데는 퍽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위트나 아이러니는 그렇게 잘 등장하지 않는다. 어떤 이론가의 지적처럼 마음속에 검사와 같은 우아함, 속도및 기술을 갖추어야 할 수 있는 위트나, 왜곡을 통해야만 그 진정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아이러니란 함부로 얻어지는 지혜가 아닌 탓이다.
우리의 말들이 많은 조롱기를 띠고, 냉소와 조소기를 띠고, 어법이 많이 뒤틀리는 것을 시대 조류의 탓이라고만 생각하면 그건 큰 오산이다. 말과 어법이 그 시대정신의 보상이라면, 우리말의 기와 왜곡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는 너무나 분명하다. 굳고 닫힌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그곳에서 호흡하고 살기 위해 굳고 닫힌 만큼 과감한 어투와 어법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이 따로 하나있다. 풍자는 그 시대의 이상을 옹호하기 위해 사용되기는 하지만, 이상을 창조하기 위한 사고의 산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옹호하기 위해서는, 그 옹호하고자 하는 것에서 새로운 사실을 첨가하거나 삭제하거나 재조정하거나하는 사고보다는, 옹호해야하는 그것 자체에 매달리게 된다는 점이다. 이게 풍자의 한계이다.
오규원<시인>
▲41년 부산출생 ▲68년 현대문학 통해 데뷔 ▲시집 「분명한 사건」 작품 「고향사람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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