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때문에…80대 할머니 금벼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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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중순,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주택에서 공사를 하던 인테리어 업자 조모(38)씨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장롱을 들어내자 나타난 작은 나무상자 안에 금괴 130여 개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개당 4600만원, 총 65억원 상당의 금괴였다. 조씨는 함께 있던 동료와 경찰에 신고를 할지를 한참을 고민하다 금괴를 1개씩 가진 뒤 다시 제자리에 넣어뒀다. 조씨는 한밤중에 동거녀인 김모(40)씨와 함께 다시 잠원동의 주택을 찾았다. 조씨는 금괴를 모두 들고 달아났다.

조씨의 범행은 완전범죄가 될 수 있었다. 조씨가 들고 간 금괴의 존재를 집주인이었던 김모(84ㆍ여)씨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금괴는 김씨의 남편인 박모씨가 모아둔 것이었다. 강남의 재력가였던 박씨는 “금만큼 믿은 만한 투자는 없다”는 생각으로 증권업 등으로 번 돈으로 금괴를 사모았다. 안방 바닥을 20cm가량 파 금괴를 넣은 후 그 위에 장롱을 올려놨다. 박씨는 2010년 이중 일부를 꺼내 가족 1명당 10개씩 총 100개의 금괴를 나눠줬다. 박씨는 이후 치매에 걸렸고, 금괴가 더 있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박씨의 부인 김씨 등 가족은 금괴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한 채 2011년 주택을 한 업자에게 사무실로 임대를 해준 상태였다.

조씨의 범행은 예상치 못 한 곳에서 덜미가 잡혔다. 조씨가 새 여자친구가 생기며 금괴를 들고 동거녀인 김씨를 버리고 떠난 것이다. 동거녀인 김씨는 수원의 한 심부름센터에 “같이 살던 남자가 금을 들고 도망갔다”며 조씨를 찾아줄 것을 부탁했다. 김씨의 부탁이 이상하다고 여긴 심부름센터 직원은 경찰에 이 사실을 제보했다.

수사에 착수한 서울 서초경찰서는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 조씨를 붙잡았다. 안방에 있던 금고에서는 금괴 40개(시가 19억원 상당)와 현금 2억2500만원이 발견됐다. 나머지 금괴는 금은방 등에 처분했다. 조씨는 금괴를 처분한 돈 29억원 중 21억원은 지인을 통해 투자를 했고, 나머지는 유흥비로 사용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조씨를 특가법상 절도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또 금괴를 발견할 당시 함께 있었던 김모(34)씨 등 인부 2명과 동거녀 김씨, 훔친 금괴를 사들인 금은방 업주 3명 등 모두 7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관계자는 “조씨의 범행 덕분에 집주인이 금괴를 찾을 수 있었다”며 “김 할머니가 말년에 쓸 돈이 늘었다고 좋아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압수한 금괴를 김씨에게 돌려주고, 추가로 회수할 수 있는 물품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영상=서울지방경찰청 서초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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