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아등『불우 돕기』에 25년간을 헌신|「소년의집」미국인 사제 소 재건 신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버림받고 고통받는 사람의 이름으로 이 편지를 씁니다.』 벽안의 미국인 사제 소재건 신부(52·본명「알로이시오·슈월츠」)가 최근 서울과 부산에서25년 동안 벌여 온 자신의 고아·행려자 구원사업에 동참할 일꾼들을 구하기 위해 카톨릭 신문 광고란에 실린「공개편지」의 서두다.
서울시 은평구 응암동 42의5 천주교 마리아 수녀 회「소년의 집」(Botstown).
소 신부가 5천5백 명의 버림받은 고아와 부랑자, 늙고 병든 행려 노약자, 정신질환 자, 결핵환자, 신체장애자 등을 모아「고아의 아버지」겸「불우한 사람들의 반려자」로서 구원의 횃불을 밝히고 있는 기독교 사회구원 현장의 하나다.
소 신부의 고아복지사업과 의료봉사, 교육사업은 그 규모나 시설, 운영방법 등 이 한국 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모범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벨기에 루벵대 신학부 수학시절 한국인 성직자와 유학생들을 만나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고 1957년 부산교구 소속 사제로 서품을 받았습니다」
이제까지 아침·점심을 손수 지어 식사하고 있는 소 신부-.
오직 가난과 불행에 봉사하는 그의 헌신은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한 듯한 인상의 깡마른 체구와 사무실분위기에서부터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서울 소년의 집 2층에 있는 침실·응접실·식당을 겸한 3평 남짓한 콘크리트 바닥의 집무실은 그 흔한 소파 하나 없이 허술하기만 했다.
현재 서울 소년의 집(2천6백 명수용) 및 부설 국민학교·갱생 원(1천4백 명)·「도티」기념병원·부산 소년의 집(1천2백 명)및 부설 중학교·공고·공업전문대·구호병원 등 소 신부의 사회사업기관 운영비는 연 40억 원-.
정부지원이 16억 원 정도이고 나머지는 소신부가 62년 미국 워싱턴에 설립한「한국 자선회」모금 등으로 충당한다는 것-.
『한국 근무 3개월만에 간염이 발병, 귀국 치료하는 동안 한국에서의 사회사업을 위한 민간 원조단체로 한국 자선회를 설립, 모금을 했습니다. 치료 후 부산으로 돌아와 처음에는 미국서 모은 돈을 각 고아원에 나눠줬습니다.』
지원해 준 고아원을 방문하고 아이들의 영양실태, 교육 등에 크게 실망한 그는 부산 송도성당 주임신부로 시무 중이던 방년 고아 1백20명을 모아 성당 뒤 주택을 매입,「고아가정」을 마련하고 신문광고를 통해 오늘의 마리아 수녀 회 전신이 된 고아사업 봉사자원 처녀들을 모집했다.
이어 70년 구호병원을 설립 고아·행려 환자·빈민 등을 무료 치료해 주면서 소 신부의 사회구원사업은 기반을 굳혔고 부산 영화숙 재생 원·대구 희망 원에서 아동 1천명을 인수해 고아식구로「소년의 집」을 세웠다.
소 신부를 중 심한 마리아 수녀 회(65년 설립·현재 수녀1백36명)의 사회구원사업은 계속 75년 서울시립 아동 보호 소·갱생 원(81년) 등을 인수해 서울「소년의 집」을 운영하기까지 확대됐다.
『고아나 부랑자 구원은 근본적으로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일과 모성을 대신해 줄 수녀, 세심한 특별 지도교육이 절대 요건입니다.』
소 신부는 일반학교에서 자칫 소외당하기 쉬운 고아들의 특수성을 감안, 자체 학교법인을 설립해 국민학교부터 전문대학까지의 정규과정 학교를 세웠다.
구청· 경찰·적십자사 미아 보호소·개인알선 등으로 5세 이상의 영아·미아·껌팔이· 앵벌이 등을 인수해 전문대까지 교육, 취업을 알선해 주고 취직후의 셋방까지 얻어 줌으로써「자립」과「갱생」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게 마리아 수녀회의 구원과정이다.
소년의 집 아동들은 30명씩 각 반별로「가정」을 구성, 어머니 역할을 맡은 수녀 1명과의 침식생활에 소 신부의 부정이 감싸는 점을 만끽하면서 어느 가정의 아이들 못지 않게 공부하고 뛰놀며 부러움 없이 자란다.
서울「도티」기념병원(1백20베드)는 수녀들이 틈나는 대로 시내 빈민지역을 순방, 환자들을 데려다 무료 치료해 주기도 하는데 의과수술 전문으로 유명한 이 병원의 최근 하루 일반 무료 진료 자는 1백50명씩이나 붐 빈다는 것이다.
소 신부는『한국은 아직 구미인들 처럼 사회사업지윈 기층이나 성금출연 관습이 잘 확립돼 있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다시 태어나도 한국에서 고아 복지사업을 계속하겠다』면서 지난 추석에 부산 소년의 집 출신「딸」이 사위와 함께 손녀를 데리고 인사 왔을 때 느꼈던 흐뭇함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이은윤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