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값3∼4년 주기로 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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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나라의 부동산값은 약 3∼4년 주기로 크게 오른다.
우리나라 부동산 값은 경제개발이 본격화된 지난 60년대 후반기부터 많이 올랐는데 그 상승추세는 꾸준히 오르는 것이 아니고 3∼4년 주기로 껑충 뛰는 것이 특징이다.
국토개발연구원의 부동산가격지수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부동산투기현상은 68∼69년,7l년,74∼75년,78년, 그리고 올해 등 모두 3∼4년 주기로 다섯 차례 나타났다. 지수 (전국평균)상으로는 65년을 1백으로 봤을 때 토지가격은 약1백 배, 주택가격은 34배 가량 뛰었다.
투기현상 가운데 가장 심한 가격상승을 보인 것이 78년의 대 투기 극으로 그 해 한해동안 집 값이 2∼3배씩 올랐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폭등이다.
69년에는 전해에 비해 토지가 2·2배, 주택은 l·7배로 뛰었고 71년과 75년에는 각각 전년대비 l·4∼l·5배로 올랐다.
실제 특정지역을 예로 들어보면 서울미아동의 토지의 경우 65년에는 평당 1만 원짜리가 68년 5만원,69년 7만원,74년 8만원,75년 10만원으로 오르고 78년에 25만원, 79년에는 35만원이 됐으며 요즘엔 40만원에 이르고 있다.
강남구신사동의 경우 65년에 평당 2천 원이었던 것이 영동개발붐을 타고 70년에 2만원, 72년에 3만원이었으며 다시 74년 투기 때 7만원,75년에 10만원이 됐다.
그 후 78년 대 투기 때 30만원, 79년에 40만원, 요즘엔 60만원이상 한다. 땅값이 폭등한 것은 주로 강남·강동구로 허허 벌판 땅이 영동개발계획에 따라 금싸라기 땅으로 바뀌었다.
다섯 차례의 투기단계를 그때 그때의 상황과 관련시켜 분석해보면 투기가 일게된 배경을 짐작할 수 있게된다.
68∼69년에는 시기적으로 2차5개년 계획의 2,3차 연도에 해당한다.
한창 경제개발을 위해 돈을 쏟아 넣을 때는 경제성장률이 68년13·3%,69년에는 15·9%나됐고 재정규모팽창률도 68년 46·9%, 69년은 30·7%나 됐다. 또 도시로의 인구이동이 가장 심해 도시의 주택부족률이 크게 늘어나고 건설 면에서는 경부고속도로를 착공. 전국적으로 땅값이 들먹였다. 이 때문에68년에 한차례 땅값과 집 값이 으르고 69년에 다시 한번 큰 폭으로 올랐다. 이때가 최초의 투기발생 시점이 된다.
다음이 71년으로 이때는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도로변지대와 인근 도시의 땅값이 크게 올랐다. 서울에서는 영동개발사업으로 강남의 토지 투기 붐이 일었다. 서울시의 강남개발은 처음부터 백지에 지도를 그리는 식이어서 토지의 유용 도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큰 매력이었으며 특히 택지개발을 우선했기 때문에 주택·택지 투기가 주를 이루었다. 영동의 초기투자가들은 73년까지 재투자를 통해 재미를 보면서 라 대지의 가격을 크게 올려놓았다.
그러다가 본격적인 투기가 다시 인 것이 74∼75년.73년의 에너지파동으로 고급단독주택의 수요가 급격히 줄고 아파트가 인기를 끌면서 고급아파트에 대한 투기가 불었다. 이기간에 대부분의 아파트값이 크게 올라 투기꾼 뿐 아니라 소유자들도 전매 또는 매도의 방법으로 배 이상의 이익을 봤다. 전매가 투기의 요체라는 것도 이때 널리 알려졌다.
서울에 우후죽순 격으로 부동산소개소가 생기고 이른바 복부인도 등장했다.
부동산투기에 따른 벼락부자가 생기고 병폐도 드러나기 시작한 시기다. 74년의 도매물가 상승률이41·2%,75년은 26·5%였던 것이다. 재정규모 팽창 율이 74년 54· 7%,75년 51·4%였던 것도 부동산투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겠다.
그러나 본격적인 대 투기 극은 78년에 왔다.78년의 투기는 대상이 독점적인 것이 아니라, 토지·아파트·단독주택·상가 할 것 없이 모든 부동산에 확산됐으며, 지역적으로도 대도시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것이었다. 이 투기로 수많은 사람이 졸지에 떼돈을 벌었으나 성실한 사람이 의욕을 잃고 많은 사람에게 투기심을 조장하는 등 돌이킬 수 없는 병폐를 낳았다. 이에 정부는 투기억제지역을 고시하고 주택분양제도를 개선하며 양도소득세제를 강화하는 등의 8·8부동산투기 종합대책까지 세웠다..
78년 투기 극의 가장 큰 원인은 중동경기를 타고 온 통화의 급격한 팽창을 들 수 있다.
77년에 통화량이 무려 39%,78년에 32%가 급팽창했다.
중동에 나간 근로자들이 보낸 돈이 주택하인으로 쏠렸으며 여기에 복덕방과 복부인의 농간이 곁들여 사상 초유의 부동산 인플레를 연출한 것이다.
해외건설수입은 75년만해도 8억3천만 달러였으나 76년에 25억 달러,77년 35억 달러,78년에는 81억 달러로 급격히 늘어났다.
이 돈이 국내로 들어와 엄청난 통화홍수를 이룬 것이다.
부동산투기는 8·8조치의 된서리로 잠복기에 들어갔다. 그동안 고급아파트에 더러 투기가 일었으나 전반적으로는 부동산 침체기였다. 이러한 침체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통화긴축과 물가안정이었다.
그러나 이·장 사건으로 돈이 풀리면서 이번에 개포·과천을 중심으로 한 또 한차례 투기광풍이 불었던 것이다.
이번 투기의 특징은 우선 지역적으로 제한된 반점현상이라는데 있다. 또 대상도 주공과 민간 고급아파트, 그리고 통장을 주로 하는 투기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번 투기도 나쁜 면에서는 78년의 투기 못지않게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반점현상이라고는 하지만 주택경기가 본격적으로 되살아나지 않은 가운데 투기심리부터 자극했고, 부분적이나마 가격을 올려놨다. 더 나쁜 것은 78년처럼 대중 구매력을 바탕으로 한 실수요가 일어 투기가 발생한 것이 아니고 일부 악덕 복덕방과 복부인들이 철저히 조작했다는 것이다.
환상적인 부동산 경기다.
이번 투기 극은 여러 요인이 복합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돈이 많이 풀렸다. 상반기만 해도 통화증가율(연율)이 10% 안팎이었으니 하반기 들어 급팽창,7월 30%,8월 40%,9월 70%에 이르렀다. 이렇게 갑자기 돈이 많이 풀렸으니 부동산투기가 안 일어났다면 그것이 비정상이다. 그 위에 실명제쇼크와 저금리로 은행을 빠져나온 돈들이 부동산 쪽에 몰렸다. 더우기 정부도 경기부양을 한다고 부동산투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일반적으로 투기는 가속적인 도시화 및 개발정책·통화팽창·물가상승 등으로 인한 환물 심리가 팽배할 때 생긴다. 그러나 원천적인 원인은 역시 통화팽창이다. 아무리 복부인이 장난을 치고 싶어도 긴축기조아래선 불가능하다. 이번 투기극도금년하반기의 방만한 통화운용으로 인한 필연적 결과라 볼 수 있다. 정부의 강력한 단속으로 일단 고비는 넘겼으나 과잉유동성이 남아있는 한 재연의 위험은 여전히 잠복해 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신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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