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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끼리 애틋한 감정 다룬 '브로맨스' 작품 잇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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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외톨이들끼리 만났다. 어디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와 낙오자들. 이들이 만나 센 척하던 가면을 벗고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될 때, 성장과 변화의 기적이 시작된다. 서울 대학로 무대에서 공연 중인 연극 ‘복서와 소년’과 뮤지컬 ‘마이 버킷리스트’는 ‘브로맨스(브라더+로맨스, 남성들끼리의 애틋한 감정)’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남성 2인극이다.

연극 ‘복서와 소년’. 소년 ‘셔틀(위쪽)’과 노인 ‘붉은 사자’의 나이를 뛰어넘은 우정은 대화로 시작됐다. 처음에 ‘셔틀’은 ‘붉은 사자’가 청각장애인인 줄 알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진 극단 학전]

#“싸워보지도 않으면 벌써 진 거야”

 ‘복서와 소년’은 독일 극작가 루츠 휘브너의 ‘복서의 마음’을 극단 학전 김민기 대표가 우리나라 현실에 맞춰 번안·연출한 연극이다. 요양원 독방에 고립돼 생활하고 있는 70세 노인 ‘붉은 사자’와 일진의 협박에 못 이겨 ‘짱’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고1 소년 ‘셔틀’이 주인공이다. 두 사람 모두 사회에서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존재다.

 “셔틀은 찌질이가 아닙니다. 그게 다 덜 맞고 다니는 요령인 거죠. 그러니까 폭력을 증오하는 평화주의자라고나 할까요”라며 천연덕스럽게 자기 소개를 하는 ‘셔틀’. 그에게 왕년의 복서였던 ‘붉은 사자’는 “싸우다 보면 질 때도 있어. 하지만 싸워 보지도 않은 놈은 벌써 진 거야”라며 일진에게 맞설 용기를 북돋운다. 그 충고는 외로운 일상에 지쳐 삶을 포기하려는 ‘붉은 사자’에게 그대로 돌아가 그의 새 출발을 돕는다.

 극 무대에는 벽이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 속 벽이 실제로는 없다는 상징이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스스로 쌓아놓은 가상의 벽을 허물 때 삶은 훨씬 수월해진다. 음악감독 정재일 특유의 서정적인 음악도 감상 포인트다.

 ◆연극 ‘복서와 소년’=27일까지 서울 동숭동 학전블루소극장, 1만7000∼2만2000원. 02-763-8233.

‘마이 버킷리스트’의 주인공 해기(오른쪽)와 강구. [사진 라이브]

 # “산다는 거, 참 괜찮은 거더라”

 창작 초연 뮤지컬 ‘마이 버킷리스트’는 살고 싶은 소년과 살기 싫은 소년, 열여덟살 동갑내기 해기와 강구의 이야기다. ‘김종욱 찾기’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등 창작 스테디셀러 뮤지컬의 음악을 맡았던 김혜성 감독이 곡을 썼다.

 해기는 근육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두 번의 자살시도를 했던 ‘양아치’ 강구는 방금 소년원에서 나왔다. 둘은 고1 때 같은 반이었다. 학교에서 혼자 노는 건 둘뿐이었다. 강구는 성질이 더럽다고 애들이 피했고, 해기는 병이 옮을까봐 옆으로 안 왔다.

 ‘마이 버킷리스트’는 이 둘이 만나 죽기 전 꼭 이루고 싶은 100가지 버킷리스트를 실천에 옮기며 벌어지는 일을 따라간다. 에스프레소 더블 마셔보기, 사이비 종교 체험하기, 스포츠카 몰고 달려보기 등을 함께하며 두 사람 삶의 색깔이 바뀌었다. “원래 인간은 스물 되기 전에 다 뒤져야 돼”라던 강구가 “산다는 게 괜찮다는 거 처음으로 알게 됐다”고 고백하기까지, 그 변화의 원동력은 친구란 존재였다. 속을 보여줄 수 있는 친구.

 ‘훈남’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비스티보이즈’의 이지호, ‘총각네 야채가게’ 김태경, ‘블랙메리포핀스’ 배두훈, ‘살리에르’ 박유덕, ‘글루미데이’ 이규형, ‘여신님이 보고 계셔’ 주민진 등 뮤지컬계 청춘 스타들이 총출동, 해기와 강구 역을 번갈아 맡으며 관객들을 울리고 웃긴다.

 ◆뮤지컬 ‘마이버킷리스트’=31일까지 서울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 4만원. 02-332-4177.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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