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씨의 소설「포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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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많은 작가들의 작품에 한이 깔려 있습니다. 그것이 짙으냐 얕으냐는 차이는 있겠지요. 저는「한」이란 제목의 연작소설을 쓰기도 했지만 작품을 써 놓고 보면 유달리 한이 밑바탕에 짙게 깔리는 것을 느낍니다.』한승원씨의 소설에 한이 짙게 깔리는 것은 그의 작가적 체질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전남의 한 섬에서 태어나 해방이후 쑥 잎·자운영 잎사귀로 허기를 채워야 하는 가난을 경험했고 6·25로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하는 비극을 본 사람이 쓸 수 있는 글은 어떤 것일까?
『작가는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고 생각됩니다. 그 나무를 키워 낸 풍토가 그 작가를 만들어 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한씨는 생명력을 말하는 작가다. 그의 소설에는 모든 생명력의 원천으로서의 바 다가 나타나고 다산성의 여자가 등장한다.
6·25의 비참한 살육현장에서 15세의 소녀가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하는『극락 산』이란 제목의 소설에서 또『포구』에서 딸을 계속 낳는 여주인공이 나타나는 것은 비극적인 상황의 극복, 한의 극복이 새로운 생명의 탄생으로부터 이루어진다는 한씨의 믿음이다.
그리고 항상 억눌리면서도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강인함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한의 극복과 함께 해학·풍자의 문제도 다루어 보고 싶습니다.
판소리 속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재미있는 해학 속에 극복의지로서의 한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소설에서 이를 미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68년에 데뷔해서『안개바다』연작, 장편『그 바다 끓며 넘치며』등 10권이 넘는 소설을 써낸 한씨는 그의 작품량에 비해 대중적 지명도를 갖지 못했다. 문단 적 평가에서는 언제나 한자리를 차지하면서도.
그것은 그의 작품세계가 시대적 상황이 요구하는 것, 예를 들면 도시인의 소외, 근로자 문제, 농촌문제 등 이 아니어서 독자들의 관심과 맞아떨어지지 못한데서 찾아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민족의 정신적 뿌리를 찾으려는 그의 노력은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한씨는 요즈음 무속의 세계에서 죽음으로부터 삶을 끌어내려는 우리 민족의 생명력을 찾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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